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는 내가 사는 세종시에서 약 7400㎞ 떨어져 있다. 기어이 전쟁은 발발했고, 저 먼 대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화면 너머로만 겨우 짐작할 뿐이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 바쁘게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들, 엄마 품에 안겨 우는 아이들. 현실보단 영화에 가까울 법한 장면들을 멍한 눈으로 따라갈 뿐 현실이란 지각은 쉽게 들지 않는다. 2022년에 이런 살풍경을 마주하게 될 줄 몰랐기도 했고,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도 생경했다.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가까울수록 공감은 커진다는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란 사건은 그저 남의 일로만 보였다.
전쟁이 피부로 느껴진 건 부끄럽게도 돈 때문이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휘발유 가격은 ℓ당 2000원을 넘겼고, 무섭게 오르는 기름값에 운전은 사치가 됐다. 정부가 유류세 인하 폭을 20%에서 30%로 늘렸지만 오를 대로 오른 기름값을 얼마나 안정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들여오는 원유 가격 자체가 비싸서다. 지난 1~2월 원유 수입 물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68.1%나 뛰었다.
기름값뿐만이 아니다. 당장 빵, 면 가격이 무섭게 오르기 시작했다. 국수부터 라면, 파스타면까지 밀가루가 들어가는 가공식품 가격이 줄줄이 올랐다. 햄버거, 피자, 짜장면, 짬뽕도 마찬가지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세계 최대 밀 곡창지대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 따르면 양국의 전 세계 곡물 시장 점유율은 밀 27%, 보리 23%에 달한다. 해바라기씨유와 옥수수도 각각 53%, 14%로 비중이 상당하다.
유럽에서는 해바라기씨유 품귀 현상도 빚어졌다. 마트에 해바라기씨유가 들어오기 무섭게 팔리는 바람에 마트 문 여는 시간에 맞춰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초 18ℓ 한 통에 평균 2만2000원가량이던 업소용 식용유(대두) 가격이 최근 5만원까지 올랐다. 유럽처럼 품귀 현상이 나타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 영공 폐쇄로 물류, 여객 운항도 차질이 생겼다. 자가격리 면제 등으로 해외여행 문턱이 낮아졌지만 연료비, 운항 시간 증가로 항공료는 치솟았다. 코로나19로 억눌렸던 여행 욕구가 비싼 항공값으로 수그러들었다.
이제야 전쟁이 내 일로 여겨진다. 이렇게라도 관심을 갖게 된 건 다행일까. 뒤늦게 전쟁의 한복판에 있는 이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피난 버스에 오른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그늘진 얼굴, 고개 숙인 아이들, 더 흘릴 눈물도 없다는 체념 섞인 복잡한 표정.
러시아군이 대낮에 거리를 지나던 민간인을 향해 발포하는 영상은 두 눈으로 보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자전거를 끌고 걸어가던 시민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러시아군 장갑차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총격을 가했다. 화약 연기가 거리를 메웠다. 시민은 일상복을 입은 민간인이었다.
각국은 돈줄을 죄며 러시아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의혹 이후 미국은 러시아 주요 금융기관의 국제 거래를 차단하는 추가 제재를 내놨다. 러시아 최대 국책은행인 스베르방크와 러시아 최대 민간은행인 알파뱅크를 금융 시스템에서 전면 차단하면서 러시아 은행의 3분의 2 이상이 대외 거래가 끊기게 됐다.
유럽연합(EU)도 논의 끝에 러시아 석탄에 대한 금수 조치와 러시아 선박의 역내 항구 진입 금지에 합의했다. EU는 석탄의 45%를 러시아에서 수입한다. 이번 제재로 인한 러시아의 연간 수입 손실은 80억 유로(약 10조6694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EU는 다음 제재로 러시아산 석유 수입 금지를 검토 중이다.
빵값이, 기름값이, 항공료가 올라서 우크라이나를 돌아본다. 돈을 더 지불하는 대가로 전쟁의 끝을 앞당길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을 텐데, 전쟁이 장기화할 것 같다는 암울한 전망이 곳곳에서 나온다. 먼 곳의 일인 줄로만 알았던 비극은 이미 가까이 다가왔다.
심희정 경제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