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만성 통증 질환의 대표적인 증상 중 하나는 피곤함이다. 어떤 날은 피곤함 탓에 고양이처럼 종일 잠만 잔다. 졸음을 이겨내려 하면 통증이 늘기 때문에 몸이 원하는 대로 하게 둔 지 오래다. 반면 어떤 날은 피곤함 탓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마치 내 키만 한 귀신이 내 몸에 딱 붙어 있는 것 같다. 몸이 무겁고 얼얼한 채로 밤을 지새운다.
그리고 또 한 종류의 피곤함. 그것은 흥분된 채 피곤한 상태다. 뭔가를 쓰거나 읽고 싶은 욕구로 가슴이 벅차지만 몸은 따라주지 않는 상태. 반은 꿈의 세계에, 반은 현실 세계에 걸쳐 있다. 영어 표현 중엔 ‘tired high’라는 게 있다. 피곤함으로 꿈을 꾸는 것 같은 몽롱함과 극도의 행복감을 동시에 느끼는 상태를 뜻한다. 수면 부족으로 아주 짧은 시간 도파민과 엔돌핀이 분비될 수 있다고.
나는 평소 말이 느린 편인데 이 같은 상태에서는 말이 극도로 빨라진다. 눈 밑이 다크서클로 어두워져 있지만 빠른 속도로 혼잣말을 하고 상모를 돌리듯 헤드뱅잉을 하며 정사각형의 방 안을 휘젓고 다닌다. 테트리스 게임의 블록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것처럼 생각이 쏟아지는데 그것을 알맞은 곳에 끼워 넣기 위해 머릿속이 바쁘다. 내려오는 블록이 원하는 곳에 알맞게 떨어지는 쾌감은 대단하다. 사람들이 왜 이런 기분에 매혹되며 다양한 약물에 중독되는지 알 것 같다.
인터넷상의 한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그러한 상태는 지나친 낙관 탓에 개인 정보를 스스로 유출하게 만들고 충동적으로 나쁜 판단을 내리게 하며 이상한 음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그러나 타인을 곧잘 믿지 못하며 냉소적이고 비관적인 인생에 찾아오는 지나친 낙관은 보물 같다. 반짝 지나갈 시간이지만 반짝이는 것은 대부분 아름다워 보인다. 나는 흥분감으로 방 안을 빙글빙글 돌다 침대에 쓰러진다. 지나친 낙관은 그렇게 꿈으로 완전히 진입하며 아스라이 사라진다.
이다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