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31.5 vs 42.4”

입력 2022-04-08 04:02

지난 2월 발표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의 ‘개신교인 사회인식조사’ 결과는 세속 사회의 눈에 너무 낯설다. 반대 31.5% 대 찬성 42.4%. 전국 성인 남녀 개신교인 1000명에게 차별금지법에 관해 물은 결과다. 2007년 법무부의 첫 발의 이래 15년간 입법 시도와 무산이 거듭된 이유로 항상 개신교의 반대가 꼽혀 왔으니, 찬성하는 개신교인이 열 중 넷으로 반대보다 많다는 건 예상을 훌쩍 벗어난다.

더구나 지난 2년간 국가인권위원회, 장혜영 이상민 의원이 각각 법안을 내놓은 후 개신교계가 이를 일관되게 반대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더 의외다. 개신교의 반대 의사는 교계 미디어, 여러 행사와 기도회, 대형교회 앞 현수막 등을 통해 뚜렷이 각인됐다. 대선 국면에선 연합기관들이 후보 검증 잣대로 이 법에 대한 입장을 내걸기도 했다. 소수 교단과 개신교 시민단체의 찬성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지만 존재감은 비교가 되지 않았다.

논박이 치열할 수밖에 없을 법안 세부 내용이나 주 쟁점인 동성애에 관한 신학적 논의는 일단 유보하고 이 수치가 의미하는 바를 살펴보자. 조사 주체와 방법론 등을 들어 결과 자체를 외면하거나 편의적으로 해석하는 건 너무 궁색하다. 먼저 우리는 그동안 차별금지법 반대론이 개신교를 과잉 대표해 왔음을 깨닫는다. 또 개신교를 균일한 집단으로 인식하는 것은 ‘신화’이며, 여느 집단처럼 쟁점에 관한 다양한 견해를 지닌 이들의 집합임을 확인한다. 이참에 개신교 여론의 비대칭적 재현 문제도 지적하자. 개신교 전체가 특정 목소리만으로 대변되는 건 다른 존재들의 상징적 삭제를 의미하기에 심각한 오류다. 세상을 향한 말의 길과 힘이 교권에 집중된 현실, 종교집단 내 복잡한 지형을 외면한 채 교권 위주의 보도에만 몰두하는 세속 언론이 함께 만들어낸 현상이다.

구성원을 향한 교계 권력의 통제력에 대해서도 짚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단과 연합기관의 일관된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찬성 비중이 이리 높은 건 그 통제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만큼 교권과 구성원, 목회자와 평신도 사이의 거리가 멀다는 뜻이다. 이를 직시하지 않으면 그 간격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 종교개혁을 거치며 모든 개인의 이성과 책임성을 강조하고 사제를 통하지 않은 계시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개신교 정신에서는 당연한, 오히려 바람직한 모습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얼마나 이를 인정하고 존중해 왔느냐에 있다.

이 수치의 핵심은 차별금지법에 대한 개신교 내 다른 해석의 묵직한 존재를 인정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간 개신교계의 공식 담론에서 차별금지법 찬성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다. 다른 입장을 인정하고 토론을 허용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존재를 인식한다 해도 타락한 세속 사상에 물들거나 미숙하고 오염된 신앙의 결과로 치부한 게 전부였다. 이제는 “신앙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신앙 때문에” 이 법 취지에 동의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교육’과 ‘설득’으로부터 ‘대화’와 ‘토론’으로 전환해야 할 근거로 충분하다.

진리의 절대성에 기반하는 종교에서 ‘절대’와 ‘상대’의 영역을 구분하는 건 참 어렵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진리를 현실로 가져오는 순간 그 절대성의 훼손은 불가피하기에 다양한 해석이 허용되지 않는 세상일이란 아주 적거나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차별금지법도 예외는 아니다. 구체적 조항 논의나 대체 입법 등 대안 마련을 위해서라도 토론은 꼭 필요하다. 신앙 공동체 안 다른 생각 사이의 토론마저 어렵다면 타종교나 세속 사회와의 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코로나 이후 변화를 모색하려는 한국교회의 진지한 고민거리이기를 바란다.

박진규 (서울여대 교수·언론영상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