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

입력 2022-04-08 04:05

봄이 오면 겨우내 묵혀두었던 상자 텃밭을 꺼낸다. 흙 상태가 괜찮은지 확인하고, 며칠 동안 물에 흠뻑 적셔 바람을 맞게 한다. 그러면 신기하게 잡초나 작은 풀이 돋아난다. 밭이 어느 정도 준비됐다면 올해는 무엇을 심을지 고민한다. 주변에서 얻어온 씨앗과 작년에 남겨둔 씨앗을 정리하고 모종을 찾아본다. 이렇게 봄맞이를 한 것도 벌써 6년째 접어든다. 화분에 콩 하나 심었다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모습이 신기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주로 작물을 심지만 이따금 꽃씨도 심는다.

그런데 작물을 상자에서 기르고 재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어떤 해에는 고추를 심었다가 꽃이 핀 후로 죽었고, 고수와 바질은 발아해서 잘 자라는 듯하더니 10㎝쯤 자라다가 시들해졌다. 반대로 어떤 해에는 오이와 호박 두 종류를 한꺼번에 심었다가 너무 잘 자라서 옥상을 다 덮은 것도 모자라 건물 아래까지 덩굴이 내려온 적도 있다. 건물 한가운데에 대롱대롱 매달린 애호박이라니. 이렇게 여러 번 시도하고 실패하면서 작물의 특성도 배우고 적합한 환경을 찾아간다. 그러면서 물과 거름이 부족해도 과해도 안 된다는 것을 배우고, 식물들 사이에서도 간격은 너무 가까우면 안 된다는 것을 배운다. 모든 생명에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듯이 말이다.

작물을 키우다 보면 내가 먹는 것이 얼마나 오래 견디고 자라서 내게 온 것인지 느끼게 된다. 마트나 시장에서 손쉽게 원하는 것을 구매할 수 있지만 그것과 다른 마음을 이 작은 작물 안에 담아보는 것이다. 씨앗을 받아서 주변에 나누는 마음, 작은 씨앗이 성장하는 과정을 보면서 겸손해지는 마음. 또 너무 더워도 추워도 안 되고, 딱 이 계절에만 자라는 존재들을 기다리는 마음까지. 이런 마음으로 올해도 씨앗과 모종을 심었다. 그중에 청경채와 옥수수는 새로 만나는 작물들이다. 따뜻한 봄기운에 잘 자라서 한 달 후에는 우리 관계도 성장해 있기를 바라본다.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