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중은행에서 근무하는 행원 A씨는 최근 황당한 경험을 했다. ‘주거안정월세대출’ 상품을 이용하는 청년 고객이 관리비를 월세에 포함해 금액을 늘린 채 대출연장 계약서를 써온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수년이 지나도록 취업하지 않은 채 1% 저금리로 관리비까지 빌려 달라는 이 고객의 요구가 도덕적 해이처럼 느껴진 A씨는 “시중은행은 주거안정월세대출 자격 요건을 확인해 대출만 내주면 된다지만 나랏돈을 정말 ‘눈먼 돈’처럼 여기는 경우가 종종 있어 마음이 편치 않다”고 털어놨다.
정부가 월셋집에 거주하는 청년의 주거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운용 중인 주거안정월세대출 제도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다. 자격 요건과 대출 연장 문턱이 낮아 도덕적 해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비판이다.
6일 은행권에 따르면 주거안정월세대출은 연 1%대 금리로 2년간 총 960만원을 빌릴 수 있다.
월세가 60만원 이하이고, 고시원·무허가 건축물이 아닌 전용면적 85㎡ 이하 주택에 거주하면 대출이 가능하다. 연소득 5000만원 이하(부부 합산)라면 1.5% 금리를, 만 35세 이하·연소득 4000만원 이하의 사회초년생 등이라면 0.5% 포인트 낮은 1%의 우대금리도 적용받을 수 있다. 부모의 연소득이 6000만원 이하라면 소득이 없는 취업준비생도 대출 심사를 통과할 수 있다.
주거안정월세대출은 2년 만기 일시상환 조건이지만 최대 4회, 최장 10년까지 연장 가능하다. 첫 1회는 원금 상환이나 금리 가산 없이 연장되고, 2회부터는 잔액의 25%를 갚아야 한다. 이 원금 상환은 0.1% 포인트의 금리 가산으로 대체할 수 있다. 우대금리를 적용받고 있다면 금리가 오르더라도 여전히 1.1%의 초저금리 상품이다.
주거안정월세대출은 청년 1인 가구의 주거비 부담이 과도하다는 통계를 기반으로 고안된 제도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주거비를 과부담하고 있는 청년 1인 가구 비율은 31.4%로 전체 평균(30.8%) 대비 0.6% 포인트 높다.
그러나 노인 1인 가구의 주거비 과부담 비율(43.7%)은 청년을 훌쩍 뛰어넘는 등 주거복지제도의 음영 지역이 여전히 크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거안정월세대출의 제도상 미비점을 손봐 악용 사례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행 주거안정월세대출 제도의 경우 무소득자가 2년간 이자만 내다가 만기에 금리를 높여 대환하면 최장 10년까지 초저금리로 돈을 빌려 쓸 수 있는 제도”라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겠지만 제도 수혜자와 미수혜자 간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원금 상환 의무화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임대차 3법으로 인해 최근 한국 주거시장의 월세 전환 속도가 빨라졌다”면서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회 초년에 단기간 거주할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 공급량을 늘리는 등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