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군이 ‘부차 학살’에 이어 수도 키이우의 위성도시 보로디안카에서도 무차별 폭격을 해 200명 이상의 주민을 살해한 것으로 드러났다.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잇는 우크라이나 남부의 전략 요충지 마리우폴은 초토화 작전을 벌여 도시 전체 건물의 90%를 파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5일(현지시간) 인구 1만3000명의 보로디안카의 실상을 담은 르포기사를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러시아군이 퇴각한 뒤 이 도시를 찾아간 취재진은 처음 목격한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3.2㎞에 이르는 도시 중심도로를 따라 늘어선 건물과 아파트 단지들이 크게 파괴돼 있었고, 아파트 단지 한 곳은 엄청난 포격에 4개 동 전체가 완전히 무너져 내려 있었다.
이 아파트에서만 200여명의 주민이 포격 과정에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신문은 전했다. 주민들은 밤낮없이 퍼붓는 포격을 피해 아파트 지하로 대피했다 건물 전체가 붕괴하는 바람에 잔해에 깔려 희생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게오르키 예르코 보로디안카 시장대행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하실로 대피했던 수십명이 실종 상태이며 잔해 아래 숨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만 200명 이상”이라고 말했다.
보로디안카는 벨라루스에서 시작돼 키이우까지 이어진 고속도로에 접한 베드타운으로 주로 키이우에 직장을 둔 사람들이 거주하던 소도시였다. 러시아군은 이 도시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침공 초기부터 보로디안카를 점령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2월 27일부터 러시아 호송대가 몰려들었고, 그때부터 러시아군이 자동차와 건물에 총기를 난사하고 무차별 폭격을 가했다고 한다.
40여일째 우크라이나군과 러시아군이 치열한 교전을 벌이는 남부 아조우해(아조프해)의 항구도시 마리우폴은 도시 전체 건물의 90%가 전파돼 사람이 살 수 없는 유령도시가 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인구 30만 가운데 여전히 12만명이 대피하지 못한 채 남아있는 이 도시는 음식과 물은 물론 난방·전기마저 끊긴 상태다.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은 인근 자포리자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재 상황은 인도적인 재앙 수준을 넘어섰다. 우리 도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됐다”고 밝혔다.
마리우폴은 우크라이나 동부의 친러시아 반군 점령지인 돈바스 지역과 2014년 러시아가 무력으로 병합한 크림반도를 연결하는 요충지다. 이곳을 점령하면 두 지역을 연결하는 육로 회랑이 완성되는 까닭에 러시아군이 여전히 집중공세를 펼치고 있다.
한편 영국 경제일간 이코노미스트는 전쟁 후 우크라이나의 피해를 추산한 결과 최소 680억 달러의 물리적 손실이 초래됐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의 2020년 국내총생산(189억 달러)의 3분의 1이 넘는 액수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