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지하철 3호선 양재역 4번 출구 엘리베이터 앞. 대합실로 내려가기 위해 기다리던 휠체어 장애인 전윤선(한국접근가능한관광네트워크 대표)씨 앞을 지나쳐 비장애인 승객들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새치기에 휠체어가 들어갈 자리가 없어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려야 했다. 전씨와 동행한 기자들은 놀랐지만 전씨는 익숙하다는 듯 “한 번 기다렸다 타는 정도는 괜찮다”고 말했다. 얌체 탑승에 새치기하는 승객까지 휠체어를 기다려주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휠체어를 타고 땅 밑으로 내려가 지하철을 탄다는 것, 그 과정은 시작부터 수월하지 않았다.
최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가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진행한 지하철 시위로 시민 사회 내 갈등이 커지고 있다. 시민들의 반발과 공당 대표의 공개 비판까지 나오면서 전장연은 지난달 30일 23번째 시위를 중단했다. 그들은 왜 지하철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이 ‘생존권’의 문제라고 말할까. 국민일보 인턴기자 3명이 지하철로 이동하는 전씨와 동행해 봤다.
전씨는 경기도 성남에서 여의도까지 출퇴근하면서 주로 지하철을 이용한다. 저상버스나 장애인 택시와 같은 교통수단이 있긴 하지만, 배차 간격이 길고 출근 시간에는 교통 체증도 심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취재를 위해 평소 출퇴근 시간 대신 다소 한산한 오후 2시 시간대를 택했다. 비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전씨와 함께 양재역 개찰구에 도착한 기자는 평소처럼 교통카드를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해당 개찰구 안에는 승강장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당황해하는 취재진의 모습에 전씨는 개의치 않고 곧바로 다른 개찰구를 찾아 휠체어를 움직였다. 기자들이 허둥지둥 주위를 살펴봤지만 엘리베이터 안내 표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지하철 역사 곳곳에 환승 방향이나 출입구 방향을 안내하는 표지판은 있었지만, 엘리베이터 안내 표시는 엘리베이터 앞에 가서야 눈에 들어왔다.
전씨는 “보통 안내 표지판을 따라 출입구와 환승 구간을 찾는데, 표지판에는 엘리베이터 위치가 없어 길을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역사 안내판에 승강장 1-1 근처에, 출입구 1번과 2번 사이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고 설명하면 찾기 쉽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휠체어 장애인들이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헤매거나 헛걸음하는 경우가 많다.
열차 타려면 걸리는 ‘턱’
엘리베이터가 있는 개찰구를 겨우 찾았지만, 또 다른 난관이 나타났다. 휠체어 전용 개찰구 철문이다. 오른쪽으로만 열리는 무거운 철문을 오른손으로 전동 휠체어 컨트롤러를 조작하면서 동시에 밀고 들어가야 했다. 전씨는 안간힘을 쓴 끝에 철문을 통과했다.
승강장에 도착한 전씨는 바닥에 장애인 표시가 있는 구역으로 향했다. 지하철 노선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통상 장애인석은 1-4, 4-4처럼 열차 칸, 맨 끝 문에 있다. 장애인 구역이 마련됐다고 끝은 아니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 ‘단차’는 해소되지 않거나 승강장 사이가 넓어 휠체어 바퀴가 중간에 걸리는 사고가 빈번하다.
전씨 역시 과거 높은 단차에 걸려 크게 다친 적이 있다고 했다.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의 단차가 높아서 열차에 올라타기 위해 최대한 빠르게 휠체어를 조종했지만, 역부족이었죠. 턱에 걸려 개구리처럼 열차 바닥에 엎어졌어요.”
장애인석이 모든 열차에 마련된 것도 아니다. 장애인석 표시가 있어 탔는데 노약자, 임산부 등을 위한 교통약자 배려석으로만 채워진 경우도 많다. 장애인석에 여행용 가방이나 자전거 같은 물건도 둘 수 있게 돼 있어 정작 이용하지 못할 때도 있다. 전씨는 “왜 장애인이 여기에 타는 거야 하면서 머리를 때린 분도 있었다”면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탑승해도 (장애인석을) 양보해주지 않아 지하철 중앙에 서게 될 때도 있다”고 전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열차가 도착했다. 다행히 양재역은 단차가 낮고 폭도 좁아 수월하게 지하철에 탑승했다. 전씨와 만나 지하철을 타기까지 18분이 훌쩍 지났다.
‘살인기계’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 도착해 7호선으로 갈아타기로 했다. 환승 통로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 전씨는 장애인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리프트를 타기도 전부터 사고가 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리프트 옆에 설치된 역무원 호출 버튼을 누르자 3분 후 역무원이 나타났다. 장애인이 직접 리프트 작동 버튼을 누르게 돼 있었으나 2017년 버튼을 누르려다 휠체어 장애인 한경덕씨가 계단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한 뒤 역무원 호출 방식으로 바뀌었다.
직원이 리프트 버튼을 대신 눌러주자 전씨가 전동 휠체어를 끌고 올라탔다. 안전바 두 개가 내려왔지만 휠체어를 지탱하기엔 턱없이 약해 보였다. 만약 전씨가 중심이라도 잃으면 앞, 뒤, 옆 어디로든 쏟아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내려가는 동안 리프트는 좌우로 계속 흔들렸다.
덜덜 떨리는 리프트 진동 소리에다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리프트 작동을 알리는 벨소리까지 겹쳐지며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리프트를 타고 내려오는 5분 동안 전씨는 혹시라도 떨어질까 불안해했다. “리프트 바닥 쪽이 계단이랑 맞닿는 탈칵탈칵 소리가 들리면 혹시나 잘못될까 무서워요.” 전씨는 리프트에서 내리고서야 입을 열었다. “이렇게 높은 곳에서 정면을 보면서 내려오니까 아찔해 죽겠어요.”
전씨는 리프트를 ‘살인기계’라고 불렀다. 실제 경사형 휠체어 리프트 사용으로 인한 사고는 1999년부터 지금까지 17건 있었다. 장애인은 단지 지하철을 타려다 중상을 입거나 목숨까지 잃었다. “죽으란 소리죠. 그래서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건데, 아무리 해도 반영이 안 돼요.”
장애인이 말하는 ‘1역사 1동선’은
7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석남행 열차에 올랐다. 장애인석 표시가 된 곳이었지만 단차가 높고 지하철과 승강장 폭이 넓어 휠체어가 덜컹거리며 힘겹게 열차를 넘어갔다. 이수역에 도착해 4호선으로 환승하려고 보니 이번에도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리프트를 타야 한다는 말에 전씨는 손사래를 치며 “차라리 역 밖으로 나가서 4호선으로 환승하겠다”고 했다.
전씨는 7호선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7분가량 지상에서 길을 따라 이동했다. 그리고 다시 4호선 엘리베이터를 찾아 타고 역으로 내려왔다. 비장애인은 환승 승강장까지 3분이면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전씨는 10분을 돌고 돌아 4호선 이수역에서 사당행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전씨는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 설치는 기본이고, 역 이용자 수에 맞게 엘리베이터 개수도 늘려야 한다”며 “고장이나 유사시 대응 등을 생각해 보면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가 2개 이상은 꼭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날은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그나마 오늘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지,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럽고 우산까지 쓰고 이동하기 정말 힘들어요.”
전씨는 장애인으로 사는 삶을 “돌아가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근육병으로 휠체어를 타기 시작한 뒤 20년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사에 한두 개 설치된 외부 엘리베이터를 찾아다녔다. 역사 안에서는 휠체어 출입구를, 지하철 안에선 장애인석을 찾아 헤매야 했다.
“내 동료가 리프트에서 떨어져 죽고, 저 틈 사이에 빠져 죽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시위는) 정치적인 거 하고는 상관이 없어요. 이거는 우리한테 생명의 문제야 생명의 문제. 장애인들은 21년 동안 똑같은 요구를 하는 것뿐이에요. 백날 얘기했는데 안 들어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다고….” 전씨는 가슴을 치며 말했다.
애초 서울교통공사는 2022년까지 모든 역에 ‘1역사 1동선’을 확보하겠다고 약속했다. ‘1역사 1동선’이란 휠체어를 타거나 앞이 보이지 않는 등 장애가 있는 교통약자들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지상 출입구에서 승강장까지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해 한번에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교통공사가 관할하는 지하철역 중 21곳은 사유지 저촉, 지장물 과다, 공간 협소 등의 이유로 ‘1동선’이 확보돼 있지 않다. 장애인 단체가 시위에 나서게 이유다. 기자들이 전씨와 동행했던 날 오후, 서울교통공사는 보도자료를 내고 “2024년까지 1역사 1동선 확보에 총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민영 이찬규 황서량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