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김정숙 여사 옷값과 0.73%P

입력 2022-04-07 04:02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정조준하고 있는 저격수는 뉴욕주 검찰이다. 뉴욕주 검찰의 트럼프 수사는 집요하고, 신중하다. 부동산 문제만 3년 가까이 파고 있다. 뉴욕은 트럼프가 자신의 트럼프그룹을 통해 부동산 사업을 펼쳤던 지역이라 뉴욕주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의 탈세와 금융사기 혐의가 포착됐다는 보도는 계속되고 있다.

트럼프를 쫓고 있는 것은 뉴욕주 검찰만이 아니다. 대선 결과에 불복했던 트럼프 지지자들이 지난해 1월 6일 의회의사당에 난입해 폭동을 벌였던 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미 하원 조사특위도 트럼프를 과녁으로 삼고 있다. 트럼프는 폭동 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트럼프는 여전히 천방지축이다. 지난달 28일엔 골프에서 홀인원을 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언론에 배포했다. 내용도 가관이다. 그는 “여러분은 내가 자랑하고 있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자랑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이미 2024년 대선 출마를 시사했다. 그러나 그의 앞에 놓인 지뢰는 너무 많다. 부동산 수사나 의회의사당 폭동 사건으로 유죄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 수사와 관련해 ‘정치보복’ 얘기가 안 나오는 것은 미국의 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 결말을 선택하면서 한국 정치는 정치보복 논란에 휩싸였다.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으로 펼쳐졌던 적폐청산 수사에 대해서도 정치보복이라는 반발이 거셌다. 항상 공격하는 쪽은 ‘법과 원칙’을 내세웠고, 당하는 쪽은 ‘정치보복’이라고 소리쳤다.

정권교체기를 맞아 김정숙 여사의 옷값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김 여사의 발랄함은 불필요한 비판을 자초했다.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개 부문을 수상한 것을 축하하기 위해 2020년 2월 20일 청와대에서 열렸던 오찬 행사에서 김 여사가 파안대소하는 장면이 사진에 찍혔다. 바로 전날, 한국에서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나왔던 상황이라 김 여사의 행동은 적절치 않았다는 비난이 일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해외 순방과 관련해서도 김 여사에 대한 뒷말이 잦았다.

시민단체의 고발로 경찰은 김 여사 옷값 수사에 착수했다. 화려했던 김 여사의 옷차림이 세간의 수군거림을 낳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5월 9일 밤 청와대를 비워야 하는 대통령 부인에 대한 수사가 ‘망신주기식’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0.73% 포인트 격차로 끝난 이번 대선은 우리 사회가 진보·보수로 확연히 갈라져 있다는 증표다. 국론분열은 여전한 화약고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26년 검사 외길’을 걸으며 ‘칼잡이’로 불렸다. 정치보복의 우려가 큰 것도 이 때문이다. 윤 당선인은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 모두에서 ‘이지메’를 당한 경험이 있다. 이런 아픔을 겪은 윤 당선인이기 때문에 정치보복을 멀리할 것이라고 윤 당선인 측 인사들은 주장한다.

전 정부에서 벌어졌던 잘못된 일은 당연히 수사의 대상이 돼야 한다. 그러나 그 수사는 신중하고 공정해야 한다. 트럼프의 부동산 문제 수사가 3년 가까이 이어지고, 의사당 폭동 사건에 관해 1년 넘게 조사가 계속되는 것은 좋은 본보기다.

민심은 무한 사랑을 쏟는 어머니의 마음이 아니다. 지금은 평온하지만, 언제든 폭풍우로 배를 뒤집을 수 있는 바다가 민심을 닮았다. 살얼음판을 걷는 조심스러움으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미다. 보수 정권과 진보 정권 모두 정치보복이라는 비명이 나왔던 가혹한 수사를 펼쳤다. 한 번씩 치고받았으니 훌훌 털 때도 됐다. 정치보복의 악순환은 이제 끊어야 한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