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자만 무려 1700여명에 달한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피해 구제 조정안이 11년 만에 나왔지만 일부 기업의 수용 거부로 무산될 처지에 놓였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가습기살균제 피해보상을 위한 조정위원회’는 살균제 제조·유통업체들과 피해자들의 의견을 들은 뒤 피해 유족에 최대 4억원, 최중증(초고도) 피해자들에겐 최대 5억여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조정안을 최근 도출했다. 그런데 업체 9곳 중 옥시레킷벤키저와 애경산업 두 곳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옥시와 애경이 피해보상 분담금(약 9240억원)의 약 60%를 차지해 이들이 반대하면 조정 성립은 어려워진다.
2011년 원인미상 폐질환으로 임신부 영유아 등이 잇따라 사망하면서 수면 위로 드러난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안방의 세월호’라 불릴 정도의 사회적 대재난이었다. 지금까지 구제를 신청한 피해자가 7600여명, 사망자는 1700여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실제 피해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기업과 정부가 안전하다고 선전한 제품을 사용했다가 지금도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이들이 여전히 많다. 귀책사유가 있는 기업이 애꿎은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을 외면하는 것은 파렴치한 일이다.
피해자들은 당초 조정안도 액수가 너무 적다며 불만을 나타냈었다. 치료비 전액 보장, 지원금 상향을 요구했다. 그런데 제품 판매량과 피해자 발생 1·2위인 옥시와 애경이 미흡한 조정안마저 반대한 것이다. 옥시 등은 이미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지만 시민단체에 따르면 옥시와 애경이 배상한 피해자는 400여명에 불과하다. 옥시 전 대표는 살균제를 출시할 때 안전성 검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 등으로 징역 6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적·도덕적으로 단죄 받은 업체들이 조정기관의 중재 끝에 나온 분담금마저 거부한다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조정위는 조정 노력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정부도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가해 기업이 피해 보상에 나서도록 해야 한다. 곧 들어설 새 정부도 국민의 머슴을 자처한 만큼 살균제 피해자들의 울분에 귀 기울이고 해결책을 함께 모색하라.
[사설] 가습기살균제 조정안 거부한 옥시·애경 염치 있나
입력 2022-04-07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