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명화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오신 그리스도’ 이야기다. 벨라스케스는 대상을 거울에 비추거나 이중으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화가다. 부엌에서 물고기와 달걀로 열심히 음식을 만드는 마르다의 얼굴은 골이 나서 부어있다. 죽어라 일하는 마르다를 향해 한 노파가 손가락을 내밀며 ‘얘 좀 봐’ 한다. 창문 안쪽에선 예수님 발밑에서 마리아가 말씀을 듣고 있다. 동생 마리아를 보내 도와달라고 말하는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마르다야 마르다야, 근심과 염려가 많구나. 몇 가지 혹은 한 가지만 하여라”고 말한다.(눅 10:38~42) 한국교회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들어야 하는지가 여기서 나온다.
‘먹다 듣다 걷다’(두란노)는 시대의 지성 이어령(1934~2022) 전 문화부 장관의 유작이다. 두란노서원은 이 전 장관을 두고 “지성의 문지방을 넘어 신앙의 세계로 들어온 저자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말과 글로 그 혜안을 풀어냈다”고 표현했다. 교회를 넘어 사회 전체와 거침없이 소통하던 저자가 2016년 제3회 기독교 사회복지 엑스포 콘퍼런스에서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두란노 편집팀과 수년에 걸쳐 그림을 고르고 글을 고치며 다듬은 원고다. 별세 직전인 지난 1월 작성한 머리말에서 이 전 장관은 “무슨 이야기를 해도 존폐의 위기인 이때 교회가 지금 여기에서 시급히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고 밝혔다.
저자는 ‘영생’ 또는 ‘빛과 소금’ 등의 명사 형태로 제시된 기독교 상징 키워드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역동적 사역을 한정 짓고 도덕적 덕목으로 축소한다고 본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서 함께 지낸 주님 사역의 실질적 역동성을 ‘먹다 듣다 걷다’의 동사 형태로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예수님이 공생애의 절정에서 제자들을 위해 최후의 만찬을 하시고 자신의 인생이 먹어야 할 빵이라고 말한 점, 제자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주고받으며 말씀을 듣게 한 점에 우선 주목한다. 뒤이어 벨라스케스의 마르다 마리아 그림을 파고든다.
저자는 예수님이 마르다의 이름을 두 번 부르며 달래면서 ‘준비하는 일이 많다’고 지적했다고 본다. ‘준비하는 일’은 헬라어로 디아코니아(Diakonia), 즉 오늘날 교회가 강조하는 사역(Ministry)이다. 그러니까 여러 사역으로 분주할 것이 아니라 몇 가지 혹은 한 가지만 하라는 뜻이다. 식당 주차 안내 봉사 등의 사역은 필요하지만, 생명의 말씀을 들어야 할 순간엔 다른 봉사를 내려놓고 집중하라는 뜻이다. 저자는 “영혼이 없는 나눔은 정치인의 포퓰리즘과 다르지 않다”면서 “사랑 없는 복지, 단순한 물질로 돕는 복지, 세상과 마찬가지로 권력과 재물에 이용되는 교회의 복지라면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육적인 필요보다 영적 말씀을 우선하는 교회가 되자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어 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예수님이 평생 걸은 거리를 재면 최소 3만4640㎞라고 소개한다. 나사렛에서 이집트까지의 왕복 거리, 5세 이후 30세까지 유대인 명절 예법에 따라 1년에 세 번 예루살렘을 왕복한 거리, 공생애 3년간 이동한 약 5000㎞를 합쳐 추산했다. 지구 한 바퀴가 4만㎞이니 예수님은 거의 지구 전체 거리를 걸어 다니며 사역했고, 예수님 사역은 걷기 사역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유언과도 같은 저자의 마지막 당부다.
“저는 한국교회가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걸어야 해요. 세상 끝날 때까지 걸어야 합니다. 멈추면 안 됩니다. 오늘과 또 다른 내일이 있어야 살아있는 것이지, 똑같은 오늘을 되풀이하고 반복하고 주저앉으면 고인 물이 됩니다. (중략) 걷는 교회가 새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