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위해 함께 춤추다’… 러·우크라 스타 발레리나들

입력 2022-04-07 04:05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 간판스타였지만 최근 반전 성명을 낸 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한 올가 스미르노바(오른쪽)가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나폴리 자선공연에서 브라질 출신 발레리노 빅터 카이세타와 듀엣을 선보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이후 볼쇼이 발레단을 그만둔 러시아 발레리나와 전쟁을 피해 고국을 탈출한 우크라이나 발레리나가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함께 춤추며 평화를 호소했다.

‘라 레푸블리카’ 등 이탈리아 언론에 따르면 4일(현지시간) 나폴리 산 카를로 극장에서는 ‘우크라이나 지지-평화를 위한 발레’ 공연이 열렸다. 우크라이나 적십자사를 돕기 위한 이번 자선공연에는 국제적 지명도가 있는 무용수 26명이 참가했는데, 러시아인 5명과 우크라이나인 9명이 포함됐다.

이 중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러시아 출신의 올가 스미르노바였다. 볼쇼이 발레단 스타 무용수였던 스미르노바는 최근 “러시아가 부끄럽다”며 강력한 반전 메시지를 발표한 뒤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으로 이적했다. 스미르노바는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솔리스트를 그만두고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솔리스트로 합류한 브라질 출신 발레리노 빅터 카이세타와 함께 이날 듀엣을 선보였다. 스미르노바가 볼쇼이 발레단을 떠난 후 서방에서 출연하는 첫 무대였다.

스미르노바는 마지막 리허설에 앞서 취재진에게 “이런 상황에서 무대에 (우크라이나 무용수들과) 함께 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산 카를로 극장의 발레 부문 알레시오 카르본 예술감독은 “올가는 러시아 정권에 공개적으로 반대한 첫 번째 무용수라는 점에서 우리 공연에 강력한 힘을 불어 넣어줬다”며 스미르노바의 참여를 환영했다.

스미르노바와 우크라이나 발레리나 아나스타샤 구르스카야(오른쪽)가 이날 리허설을 앞두고 포즈를 취한 모습. AP연합뉴스

이번 공연에서 스미르노바와 함께 중심 역할을 한 무용수는 우크라이나 키이우 오페라극장의 간판 발레리나로 활동해온 아나스타샤 구르스카야다. 우크라이나를 겨우 탈출한 구르스카야는 “(전쟁으로)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면서도 “오늘 이 공연에 참여해 내 춤으로 조국을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폴리의 우크라이나인들은 러시아의 침공이 계속되고 민간인 학살현장이 공개되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무용수가 러시아인과 함께 춤추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공연 반대 시위를 벌였다. 일부 우크라이나 무용수는 러시아인과 같은 무대에 서지 말라는 협박 전화까지 받았다.

무용수들은 긴장 속에서도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했으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무용수들은 무대에서 서로 포옹하고 격려했다. 카르본 예술감독은 “예술가들의 용기에 감사를 표하고 싶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무용수들 모두 우리와 함께하기 위해 위험을 감수했다”고 밝혔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