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작가들의 SF 도전… 문학·장르 경계 지운다

입력 2022-04-07 20:53
지난 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열린 SF 앤솔러지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출간 간담회에서 참여 작가들이 질문을 받고 있다. 마이크를 쥔 사람이 조예은 작가이고, 그 오른쪽으로 우다영 박서련 문보영 작가가 앉아 있다. SF 전문 출판사 허블은 이번 책을 시작으로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SF’를 내건 ‘초월 시리즈’를 전개한다. 연합뉴스

SF(과학소설) 전문 출판사인 허블이 ‘초월’이라는 시리즈를 시작하며 내놓은 첫 책이다. 우다영 조예은 문보영 심너울 박서련 작가가 각각 한 편씩, 총 다섯 편의 SF 작품을 수록했다. SF 앤솔러지(선집)인데 작가들이 모두 30세 안팎으로 젊은 데다 SF를 처음 써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보영은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시인으로 이번에 SF에 도전했다. 여러 권의 소설을 낸 우다영과 박서련도 첫 SF 소설을 선보였다.

허블은 지난 5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간담회를 열고 “젊은 작가들의 새로운 SF를 통해 정통 문학과 장르 문학의 경계를 실제로 지우려고 한다”고 시리즈 기획 의도를 밝혔다. 또 “SF에 관심이 있는 젊은 작가들이 많다”면서 “SF를 쓰고 싶은 작가들은 모두 모여라, 이런 판을 만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SF는 지난 몇 년 사이 한국문학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특히 젊은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SF 작가인 김초엽이나 천선란은 한국 문학의 미래로 불린다. 정보라의 SF 소설집 ‘저주토끼’는 올해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

2015년 등단한 박서련은 “요즘 한국 SF를 보면서 이런 게 문학이고 새로운 흐름이구나, 여기에 탑승하고 싶다는 게 젊은 작가들의 마음일 것”이라며 “우리 세대는 문화적으로 정통 문학의 세례 외에도 영상물이나 웹컨텐츠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그래서 일명 ‘문단작가’라 해도 꼭 기존의 문학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구가 어떤 외계 행성의 내세라는 설정을 내세운 ‘이다음에 지구에서 태어난다면’을 실었다.

조예은과 심너울은 SF 작품을 써왔다. 심너울은 이번 책에서 외계 바이러스에 의해 괴물 형상과 초능력을 가진 이들이 태어나고, 정부기관이 초능력자를 통제하는 세계를 그린다. 조예은은 뭐든 집어삼키는 호수가 폐기물로 뒤섞인 괴물을 뱉어내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조예은은 이날 간담회에서 “사랑에 대해 써왔는데 이번에도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며 “제게 SF나 장르문학의 장점은 현실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의 세계를 그릴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디스토피아는 사랑을 그리기에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우다영의 ‘긴 예지’는 예지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모아 예지 인공지능을 만들어 대재앙에 맞서는 과정을 그린다. 우다영은 “굉장히 건조하고 논리적인 문장을 나열하고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집요하게 정확하게 어떤 충격이나 정서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SF의 화법에 반했다”고 했다.

문보영의 ‘슬프지 않은 기억칩’은 유년이란 게 있을 리 없는 AI 로봇들이 유년의 기억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문보영은 ‘작가의 말’에서 “기억이라는 것이 공유될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애초에 성인으로 태어나고 유년의 기억을 기억칩이 대신한다면? 그리고 유년의 기억을 다른 존재와 공유한다면?”이라고 자기 작품을 소개했다.


책 제목을 ‘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으로 붙인 건 작가마다 디스토피아, 외계 행성, 로봇, 초능력 등 각기 다른 세계를 만들어 내지만 공통적으로 사랑이라는 정서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다른 기이한 세계를 상상하면서도 그 SF 세계에 우리가 아는 사랑이라는 게 있다고 믿고 싶은 듯하다.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모두 장편소설이나 연작소설로 발표될 예정이다. 허블 측은 현재 초월 시리즈에 참여하기로 한 작가가 14명이라며 그 숫자를 계속 늘려가겠다고 전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