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2장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땅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땅만 소개하지 않고 ‘왕들’을 함께 소개한다는 점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강 동쪽의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모든 아라바 일대를 점령하였는데, 그 땅의 ‘왕들’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요단 저편 해 돋는 쪽 곧 아르논 골짜기에서 헤르몬 산까지의 동쪽 온 아라바를 차지하고 그 땅에서 쳐죽인 왕들은 이러하니라. 시혼은 헤스본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이라 그가 다스리던 땅은 아르논 골짜기 가에 있는 아로엘에서부터 골짜기 가운데 성읍과 길르앗 절반 곧 암몬 자손의 경계 얍복 강까지이며.’(수 12:1~2)
이후 연결되는 구절들에서 계속 정복한 땅과 함께 무찌른 ‘왕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왜 땅만 소개하지 않고 ‘왕들’을 말할까요? 거기에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신 이유와 밀접하게 관계가 있습니다. 왕과 귀족이 없는 사회가 이스라엘 사회였습니다. 왕과 귀족이 ‘아직’ 없는 게 아니라 원래 왕과 귀족이 없는 사회가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첫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너무나 원했기 때문에 허락하셨으나 하나님은 왕정을 싫어하셨다고 성경에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너희를 애굽인의 손과 너희를 압제하는 모든 나라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셨거늘 너희는 너희를 모든 재난과 고통 중에서 친히 구원하여 내신 너희의 하나님을 오늘 버리고 이르기를 우리 위에 왕을 세우라 하는도다 그런즉 이제 너희의 지파대로 천 명씩 여호와 앞에 나아오라 하고.’(삼상 10:18~19)
하나님은 왜 왕정제도를 싫어하셨을까요. 왕이 생기면 귀족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들을 위해 세금과 병역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백성은 그만큼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 보입니다. 모세와 여호수아는 그저 백성의 지도자였습니다. 왕이 아닌 지도자가 이끄는 사회가 왕의 사회들을 정복하고 무찌른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은 백성들이 간절히 원해서 사울 왕으로부터 왕정제도를 갖게 되었습니다. 왕정제도가 이스라엘에게 준 혜택이 있을까요. 이스라엘 왕들의 면면을 보면 왕정제도가 이스라엘에게 혜택이라기보다는 불행의 씨앗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서와 역대서의 기록을 통해 이스라엘에는 선한 왕은 거의 없고 대부분 악한 왕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럴까요. 왕들의 성격이 악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사람은 누구나 죄인이어서 왕이라는 절대권력을 가지면 사람이 선해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부패하기 쉽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은 결코 허투루 들을 말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절대 권력’을 부여하면 그 권력자와 백성 모두가 불행해질 것입니다. 목사에게도 절대 권력을 부여하면 목사도 성도도 불행해지고 말 것입니다. 지도자는 필요하지만 지도자에게 절대 권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셔서 그 권력으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람에게 인자와 자비를 베푸십니다. 영원한 왕이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선하신 왕이신 하나님을 온 맘으로 찬양합시다.
윤용 말씀의빛교회 목사
◇말씀의빛교회는 목사와 성도가 오직 말씀에만 삶을 걸고 말씀을 읽고 묵상하여 말씀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말씀의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갈망으로 살아가는 교회입니다. 코로나 시기임에도 성도 모두가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