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새 정부를 위협할 갈등관리 리스크

입력 2022-04-07 04:06

통합과 경제는 새 정부의 코드다.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국민통합위원회를 설치하고 총리급 인사를 위원장으로 위촉한 것이나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동백꽃 배지를 달고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해 희생자의 명예 회복을 약속한 것들이 통합 코드의 사례다. 노무현정부에서 공직의 전성기를 보냈던 인사를 총리 후보로 지명할 때도 경제와 통합이 선택 기준이었던 듯하다.

의문은 새 정부가 감당해야 할 정치사회적 갈등의 위험 수위가 이 정도의 통합 행보로 제어될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윤 당선인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의 갈등 감수성이 높아 보이지도 않는다. 보수파 정치인들은 대체로 이에 둔감한 데다 당선인 자신이 갈등의 조정과는 거리가 먼 직업적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용기와 결단이 중요하지 대화와 타협은 그의 공직 윤리에 반하는 가치였을 것이다. 그런 단초도 보였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를 다루는 인수위의 경직적 태도와 조급함은 반대파에게 시빗거리를 제공했고 지지자들에게는 불안감을 심어줬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 역시 경륜과 전문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겠지만 대부분의 엘리트 경제 관료가 그렇듯이 갈등관리 솜씨까지 좋지는 않을 것이다. 거시경제를 다루는 정책 당국자들이 해법을 마련할 때 흔히 실행 과정에서 불거지는 갈등관리 비용을 낮춰 잡거나 갈등 조정은 자기 책임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갈등관리 리스크를 걱정하는 이유가 대통령과 총리의 직업적 특성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새 정부가 감당해야 할 안팎의 전환기적 위기가 그만큼 위중한 데다 문재인정부가 외면했던 밀린 숙제도 많다는 점이다. 문 정부는 갈등을 피하기 위해 재정을 투입하거나 개혁을 포기했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자영업자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10조원 이상의 일자리 안정자금을 투입한 것이나 국정 과제였던 국민연금 개혁을 포기한 것이 좋은 예다. 새 정부가 재정건전성을 지키려면 지역 또는 이익집단의 반발을 무릅쓰고 지출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은 발등의 불이 됐지만 정부 결단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제대로 하려면 적자 폭이 갈수록 커지는 군인과 공무원 연금에도 손을 대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잘해야 본전인 평가의 기본값에 불과하다.

새 정부가 진검승부를 펼칠 전투는 혁신 성장을 위한 산업 구조조정과 규제 합리화, 교육과 노동 개혁에서 결판난다. 그런데 혁신의 성패는 정책의 경제적 합리성이 아니라 실행 과정에서 불거질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좌우될 때가 많다. 만성적 적자와 저생산성의 늪에 빠져 있는 영세서비스업의 고도화는 이미 나와 있는 처방이었지만 역대 정권들이 결행하지 못한 이유는 갈등의 크기와 비용을 가늠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모든 정권이 규제 철폐를 외쳤지만 신발 속 돌멩이가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는 그것이 기득권의 젖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이해관계가 더욱 복잡하고 갈등 지수도 높은 교육과 노동 개혁을 일거에 밀어붙일 수 있을까? 새 정부의 정책 개혁이 과거처럼 용두사미 또는 대실패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다르다는 자만부터 버려야 한다. 그리고 25년 가까이 축적된 성공과 실패의 사례를 갈등관리 관점에서 면밀히 분석할 필요가 있다.

새 정부가 갈등관리에 특별히 유능하지도 않고 개혁을 피할 수도 없다면 선택은 셋 중 하나다. 연정과 공치(共治)에 나서거나 사회적 대타협을 시도하거나 때를 봐가며 개혁의 속도를 조절하는 방법밖에 없다. 대선을 전후해 일각에서 제기됐던 연정이나 연합정치는 정책 집행과 갈등관리에 매우 효과적이지만 당분간 실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정권 출범 초기 사회적 대타협 기구를 통한 국민적 합의 도출도 하나의 대안이지만 윤 당선인을 비롯한 인수위 누구도 그런 고민은 없어 보인다. 남은 선택은 조심하며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인수위에서 국정 과제의 우선순위를 정할 때부터 과제별 갈등관리 방안을 점검하고 갈등 이슈가 일시에 집중되지 않도록 추진 전략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과감한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국회는 야당 지배하에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008년의 광우병 파동은 정권 초기 갈등관리의 실패가 초래하는 해악을 잘 보여준다. 이후 이명박정부는 실용노선을 포기했고 여야는 진영 정치에 갇히게 됐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