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고귀한 낭비

입력 2022-04-07 03:05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선생님을 향해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가진 한 여인이 한 돌발 행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같은 사건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도 기록돼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향유를 왕과 제사장, 선지자를 세우는 것과 같이 머리에 붓는 행동이 중요했고, 그 여인의 이름보다는 여인의 행동이 중요했나 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온 세상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그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라고 마가복음 14장 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마치 그 향유가 온 집안에 향기를 풍겼듯 말이지요.

요한복음에는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가 아닌 발에 붓고 자기 머리로 닦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만큼 자신을 낮춰야 가능한 행동입니다. 순결한 나드 향유를 부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건 바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가룟 유다가 이 장면을 보고 비난했습니다. “그걸 팔아 가난한 사람들이나 돕지”라고 말한 건 유명한 이야기지요. 그러나 그의 의도는 참되지 못했습니다.

물론 사건만 두고 보면 낭비가 맞습니다. 장례 치르는데 사용한 향유 가격은 상당히 고가였습니다. 1년 치 연봉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하니 말이죠. 그런데 바로 그래서 여인의 행동이 사랑이고 믿음이지 않을까요. 사랑한다면 가장 소중한 것을 주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하고 믿기 때문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큰 대가를 치를 수 있는 것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 예배도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낭비일 수 있습니다. 주일에 알람을 맞추지 않고 푹 쉬어도 되는데 굳이 주일마다 이른 아침 일어나 예배당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영성 신학자 마르바 던은 예배를 가리켜 ‘고귀한 시간 낭비’라고 말했습니다. 낭비인데 고귀하답니다.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시간 낭비만 하고 있었습니다. 고귀한 일의 현장에는 있었지만 동참하지는 않고 비난만 했던 것이죠. 그에게는 사랑이나 믿음, 고귀함도 없었고 그냥 낭비였을 뿐입니다.

성서정과(Lectionary)에 따라 서신서 말씀을 보면 바울의 과거는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습니다. 그러나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빌 3:8, 새번역) 여긴다고 했습니다.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것을 알게 되니 다른 건 가치가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목표점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빌 3:13~14, 새번역)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고귀한 일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옛것은 지나갔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사랑과 믿음의 고귀한 낭비를 깨닫습니다. 바울을 통해 가장 고귀한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방향 설정을 배웁니다. 이제 성서정과의 구약 말씀을 통해 바울에게 새롭게 역사하셨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새롭게 역사하시는데 그 목적이 무엇인지 기억하고자 합니다.

“내가 이제 새 일을 하려고 한다…. 내가 광야에 길을 내겠으며, 사막에 강을 내겠다. 이 백성은 나를 위하라고 내가 지은 백성이다. 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사 43:19~21, 새번역)

담안유 목사(언더우드선교회)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 소속인 담안유 목사는 화교로, 또 다른 화교 3세 서명보 목사와 언더우드선교회를 설립해 중화권 유학생과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역을 하고 있다. 한·중 이중언어 예배와 공유 예배당, 카페 언더우드 운영도 하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