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건너온 봄이 섬진강(蟾津江)을 거슬러 오른다.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서 태어난 섬진강은 전북, 전남, 경남을 지나쳐 흐르는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긴 강이다. ‘두꺼비 섬’자와 ‘나루 진’자가 합쳐진 ‘두꺼비 강’이다. 고려 우왕 때 이 강을 건너 침범하는 왜구를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음으로 몰아냈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섬진강변에 봄이 흐르고 있다. 봄소식을 전한 하얀 매화와 노란 산수유가 절정을 지나고 화사한 벚꽃과 홍매화, 노란 수선화가 ‘봄꽃의 향연’을 펼친다. 벚꽃만 본다면 전남 구례에서 경남 하동으로 이어지는 ‘섬진강 벚꽃길’을 빼놓을 수 없다. 섬진강을 가로질러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와 구례읍 신월리를 연결하는 보행교 두꺼비다리가 시작점이다. 다리 바로 옆 전망대는 벚꽃과 섬진강 풍광을 함께 담을 수 있는 사진 명소다. 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꽃대궐이 장관이다.
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19번 국도와 861번 지방도가 긴 벚꽃 터널을 이룬다. 강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벚꽃길은 환상적이다. 팝콘처럼 터진 하얀 꽃송이가 하늘에 수를 놓는다. 그 사이를 천천히 드라이브하거나 자전거로 질주하면 꽃멀미가 날 지경이다. 861번 지방도 벚꽃길은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까지 이어진다. 남쪽으로는 매화마을로 유명한 전남 광양군 다압면에 이른다.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를 건너면 하동군 화개면 탑리다. 남도대교는 빨간색과 파란색 아치로 이뤄져 있다. 태극문양으로 영호남 화합을 상징한다. 섬진강 푸른 강줄기와 하얀 모래톱, 그리고 녹색의 차밭과 어우러진 봄꽃 풍경은 한 편의 시요, 한 폭의 그림이다.
17번 국도와 맞붙은 구례읍 원방리 섬진강변에 ‘섬진강대숲’이 있다. 높이 쭉쭉 뻗은 대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약 500m 산책로 겸 자전거길이 대숲 사이로 이어진다. 산책로 곳곳에 마련된 나무의자에 앉아 고개를 젖히면 바람에 흔들리는 초록 댓잎의 춤사위가 파란 하늘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바람에 사각거리는 소리는 코로나19에 지친 심신에 힐링을 안겨준다.
강을 거슬러 오른 봄은 산자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 경내의 300여년 된 홍매화는 광양의 매화가 절정의 시기를 넘긴 뒤 붉은 꽃을 피운다. 강원도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전남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전남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와 함께 4대 매화에 꼽힌다. 다른 홍매화가 겹꽃인 것과 달리 홑꽃으로 꽃잎이 5장인 것이 특이하다. 색깔이 검붉어서 흑매화로도 불린다. 건물 기와 등 무채색을 배경으로 휘감아 도는 듯한 줄기와 유연하게 늘어진 가지의 화려한 색감이 고혹적이다. 이른 아침 건너편 산 위에서 햇빛이 내리꽂히면 매화는 온통 꽃등불로 변한다.
구례군에서 노란 꽃을 보는 산수유 마을은 산동면에 있다. 반곡·상위마을, 현천마을, 개척마을이 대표적이다. 개척마을에는 산둥성 출신 처녀가 중국에서 산수유나무를 가져와 처음 심었다는 시목지(始木地)가 있다. 1000년을 훌쩍 넘는 세월을 지났지만 여전히 노란꽃을 피우고 있다. 시목지 바로 밑에는 임진왜란 때 원균의 칠천량 패배 후 3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된 이순신이 조선수군의 재건을 위해 출정한 곳이 구례임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있다. 바로 옆에 푸른 물빛이 아름다운 저수지를 끼고 있는 현천마을이 자리한다.
산수유 꽃도 서서히 물러나지만 구례에서 여전히 노란 봄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 산수유 마을에서 가까운 산동면 지리산치즈랜드다. 지리산 국립공원과 구만저수지를 접하고 있어, 아름다운 경치와 탁 트인 전망으로 ‘한국의 스위스’로 불리는 곳이다. 철쭉 단풍 등 계절마다 다채로운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다.
요즘 초록빛 초원에 노란 수선화가 절정이다. 치즈 만들기, 송아지 먹이 주기 등 체험도 가능하다. 배우 김다미와 최우식이 출연한 영화 ‘마녀’의 촬영지로, 한국관광공사가 발표한 2021 트렌드 리포트 ‘인스타를 빛낸 올해의 여행지 총결산’에서 ‘좋아요’를 가장 많이 받은 여행지 4위에 올랐다.
여행메모
지리산치즈랜드 ‘SNS 핫플’
수달전망대에서 섬진강 한눈에
지리산치즈랜드 ‘SNS 핫플’
수달전망대에서 섬진강 한눈에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가면 구례 화엄사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구례 지리산치즈랜드는 ‘구례 SNS 핫플’로 뜨는 곳이다. 낮은 언덕에 조성된 수선화 군락지 너머로 구만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입장료는 성인 3000원.
간전면 섬진강 강가에는 섬진강수달생태공원이 있다. 전시관, 어린이놀이터, 홍매화산책로, 전망대 등으로 구성된다. 전시관에선 수달의 생태를 고화질로 촬영한 생동감 넘치는 영상을 상영한다.
수달전망대에 오르면 공원 전경과 섬진강 물줄기가 한눈에 보인다. 구례구역은 구례의 관문이다.
구례=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