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판례에서만 제한적으로 인정되던 ‘인격권’을 민법에 명문화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마련했다. 불법 녹음·촬영, 직장 내 갑질, 디지털 성범죄 등 각종 인격권 침해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 등의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논란이 된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을 기반으로 한 보도 역시 인격권 침해로 인정될 수 있는 여지가 커졌다.
법무부는 5일 민법 제3조의 2 제1항을 신설해 인격권을 ‘사람의 생명, 신체, 건강, 자유, 명예, 사생활, 성명, 초상, 개인정보 등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로 규정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민법 제3조의 2 제2항에선 인격권 침해의 중지를 청구하거나, 사전적으로 침해의 예방을 청구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사후적 손해배상 청구만으로는 인격권 침해에 대한 권리 구제가 어렵다는 취지에서다.
민법에 인격권이 명시되면 형법상 죄로 인정되지 않더라도, 인격권 침해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경우가 늘어날 수 있다. 정재민 법무부 법무심의관은 브리핑에서 “재산적 손해가 있을 때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게 근대 민법의 기본이었는데, 인격권이 도입되면 재산 손해가 없어도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민법에 인격권 조항을 신설하려는 시도는 2004년에도 있었지만 관련 개정안이 국회 통과되지 못했다.
기술 발전에 따른 온라인 폭력, 가짜뉴스 유포, 메타버스 내 인격 침해 등 다양한 형태의 인격권 침해가 발생하면서 이를 민법에 명문화할 필요성은 점점 커지는 상황이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사이버 명예훼손·모욕 관련 형사사건은 직전년도 대비 49.5% 증가했다.
특히 당사자의 동의 없는 녹음 등을 이용한 보도들도 이번 민법상 인격권 명문화의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정 심의관은 “원치 않는 방식으로 편집된 영상이나 녹음이 보도될 예정이라면, 인격권 침해를 막기 위해 예방청구권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같은 내용이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 데까지 나아가진 않을 것이라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정 심의관은 “보도 사안에 따라 인격권 침해에 따른 예방청구권 적용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부는 이날 미성년자가 부모의 빚을 떠안지 않도록 성인이 된 이후 ‘상속 선택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민법 개정안도 입법예고했다. 미성년자가 성년이 된 후 상속채무가 상속재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을 안 날부터 6개월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조민아 구정하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