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질투와 노화의 상관관계

입력 2022-04-09 04:02

치매 걸린 아내를 둔 할아버지가 있다. 그는 당신 나름대로 아내를 돌보다가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혀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게 된다. 아내를 보러 요양원에 자주 들르기는 하지만 그의 마음은 날이 갈수록 쓸쓸해지기만 한다. 이따금 그는 이성 친구와 어울리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낀다. 사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와 저녁을 함께하거나 공연을 보러 간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남편으로서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여생을 외롭게 보내야 할지, 아니면 이성 교제의 가능성을 열어 둬도 괜찮을지. 그는 깊은 고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유명한 인생 상담 칼럼인 ‘디어애비’에서 읽은 한 할아버지의 사연이다. 이 칼럼을 두고 남자친구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나는 치매에 걸렸어도 느낌으로 다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며 할머니의 편을 든 반면 남자친구는 끝을 알 수 없는 간병을 하는 이의 심정도 헤아려 줘야 한다며 할아버지의 편에 섰다. 가재는 게 편이라더니, 나 원 참. 나는 그런 남자친구에게 부득부득 이를 갈며 대꾸했다. “아니, 벌써부터 나 요양원 보내 놓고 다른 할머니랑 데이트할 생각에 부풀어 있는 거야?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그 꼴 절대로 못 봐. 무병장수할 테니까 어디 한번 두고 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얘기했지만 내 꿈은 정말로 무병장수다.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야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유에서다. 나는 내 꿈을 가뿐히 이룰 수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의 근원은 나의 할머니로부터 비롯됐다. 할머니는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태우시고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만 하셨으며 혀가 아릴 정도로 단 식혜를 물처럼 드셨음에도 백 세 가까이 살다 가셨다. 나는 아빠도 엄마도 아닌 할머니의 얼굴을 쏙 빼닮았으니 장수 유전자 역시 물려받지 않았을까?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최고령 할머니로 ‘생로병사의 비밀’에 출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나의 꿈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유튜브에서도 건강과 관련된 영상을 곧잘 추천해 주곤 한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야 한다는 뻔한 이야기가 대부분인지라 시시하기는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는 저마다의 비법을 풀어놓은 댓글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혼하면 배우자가 속을 썩여 없던 병도 생기니 미혼으로 살아야 한다는 둥, 휴대폰을 들여다보면 노안이 오니 이런 영상 볼 시간에 잠이나 자라는 둥, 사람들의 재치에 실소가 절로 터져 나온다. 그렇게 한참을 낄낄거리던 나는 ‘노화의 지름길은 질투와 증오심’이라는 댓글을 읽고서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이게 진짜라면 ‘생로병사의 비밀’ 출연은 물 건너갔구먼.

스스로가 너무나 치졸해 말하기 부끄럽지만 고해성사하는 심정으로 나의 죄를 고백한다. “저 사람은 나보다 덜 노력했는데 어째서 더 성공했지?” 하며 동료 작가를 질투했다. 그가 나보다 덜 노력했는지 더 노력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내 연락을 피하지?” 하며 오랜 친구를 미워했다. 내가 그럴 만한 이유를 제공했을 거라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고 말이다. “어머, 웬일이야, 별꼴이다 진짜!” 가시 돋친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 걸로도 모자라 여기저기 퍼뜨리고 다녔음을 인정한다.

질투와 증오심이 노화의 지름길인지 알 길은 없지만 그것으로 가득한 여생을 보낸다면 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루빨리 나를 데려가지 않는 하늘마저 증오할지도 모를 일이다.

타고난 성품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뭔들 못 하랴. 가진 것이라고는 시간뿐이니 지금부터 차근차근 노력해 보련다. 나보다 더 잘 된 사람을 질투하는 대신 나보다 더 노력했구나 생각하며 그이를 본받아 보겠다. 나를 멀리하는 친구를 미워하는 대신 내가 오죽했으면 나를 피할까 생각하며 나의 행동을 뉘우쳐 보겠다. 우아, 잘 됐다, 축하해 진짜! 기쁨을 나눠 배로 만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동네방네 소문내고 다니며 그 기쁨을 백배 천배 늘려 보겠다.

그리고 먼 훗날 세월을 이기지 못한 내가 몸져눕는다면, 그런 나를 돌보느라 지친 남편이 콧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다른 할머니와 데이트하러 나간다면…. 흐음, 아무래도 이건 좀 어렵겠는데?

이주윤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