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역사는 돌고 돈다

입력 2022-04-06 04:02

역사는 돌고 돈다는 격언이 있다. 옛날에 발생했던 일들이 현대에 들어 반복되는 일이 허다하다는 뜻이다. 이를 반면교사 삼아 안 좋았던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갑자기 이런 평범한 격언을 꺼내든 이유는 우크라이나 사태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 상황과 흡사한 면이 많아서다. 바로 전체주의 국가의 극단적 민족주의 그리고 민간인 제노사이드(집단학살)이다.

자고로 전체주의 국가는 과도한 민족주의를 부르짖는다. 1930년대 나치 독일이 그랬다. 선거로 정권을 잡은 나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 의식을 지우기 위해 게르만족의 우월성을 과시했다. 영토 확장 야욕도 숨기지 않았다. 이런 바탕에서 나치 독일이 가장 먼저 탐냈던 곳이 옛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였다. 히틀러는 이 지역에 독일 민족이 다수 살고 있다며 할양을 요구했다. 결국 전쟁을 피하고 싶었던 서양 열강들은 1938년 뮌헨 협정을 통해 나치 독일의 요구를 들어준다. 욕심은 더 큰 욕심을 부르는 법. 결국 히틀러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폴란드를 넘어 전 유럽을 석권하기 위해 2차 대전을 일으켰다.

우크라이나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움직임이지만 그 근본적 원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과도한 민족주의에서 비롯됐다는 게 서방 주요 언론의 분석이다. 러시아는 현재 푸틴 대통령이 독재를 펼치는 사실상 전체주의 국가다. 그리고 푸틴은 옛 소련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민족이 사는 곳은 러시아의 땅이라는 이상한 인식이 그의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민족이 다수를 차지하는 우크라이나 지역을 줄곧 탐내왔다. 크림반도를 2014년에 합병했고, 돈바스 지역에는 친러시아 반군을 지원해 자칭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과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을 만들었다.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의 구실도 돈바스 지역 내 러시아인 보호였다. 다른 점은 80여년 전엔 세계열강이 나치 독일에 굴복했지만 이번엔 한마음으로 뭉쳐 러시아에 대항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과도한 민족주의가 나오게 되면 전쟁에서 필연적으로 민간인에 대한 집단학살이 자행되는 점도 세계 역사에선 반복됐다.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수백만명의 유대인을 집단학살했고, 1990년대 보스니아 내전에선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도 최근 이런 집단학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지난 3일 부차라는 도시 곳곳에서 민간인의 즐비한 시신이 발견됐다. 손이 뒤로 묶여 총살된 사람, 여성·어린이도 있었다. 이런 민간인 살상은 우크라이나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수도 키이우 인근 브로단카 등의 집단학살 규모가 부차보다 클 수 있다고 했다. 독재자는 항상 자만에 빠진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히틀러는 연합국을 과소평가했고, 푸틴 대통령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러시아의 군사력을 과신했다.

어쨌든 극단적 민족주의와 집단학살을 막을 방법은 이에 맞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행동이라는 것도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 1930년대 세계열강이 맺었던 뮌헨 협정은 나치 독일의 팽창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히틀러의 욕심만 키워줬다. 결국 전 세계가 독재자의 행위를 규탄하고, 제재를 통해 상대를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현재 서방 세계의 움직임과 러시아 제재가 그 해답일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극악무도한 집단학살에 대해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모규엽 국제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