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무엇무엇에 대해서

입력 2022-04-06 04:08

교직 생활 때의 일이다. 교직 말년에 교장으로 8년 동안 일했는데 그때 나는 내 생각대로 특별하게 학교를 운영했다. 그런 가운데 하나가 공식 행사에서 내 이름으로 주어지는 모든 상장이나 증서를 내가 직접 읽는다는 것이었다. 아니, 자기 이름으로 된 상장이나 증서를 자기가 읽는 것이 왜 특별한 일이 되는가?

현장에서 보면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5·16군사정변 이전에는 주는 사람이 그런 문서를 직접 읽었다. 분명히 학교에서도 교장 선생님이 직접 읽었다. 그런데 5·16군사정변 이후에 사회 보는 사람이 읽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이것도 군사문화 가운데 하나다. 군사문화를 씻어야 한다면서 정작 이런 것은 바로잡지 않은 것이다.

대신 읽는 것을 대독(代讀)이라고 한다. 본인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이 대신 읽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본인이 멀쩡하게 있으면서 사회 보는 사람이 대신 읽는다? 이거야말로 난센스요 해프닝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멀끔하게 지나간다. 우리 마음속 깊숙이 파고든 허위의식 때문이다.

나는 시를 오래 써온 사람으로 가끔 후배 시인들에게 ‘무엇무엇에 대해서’ 쓰지 말고 ‘바로 그것’을 쓰고, 나아가 ‘바로 그것이 되도록’ 쓰라는 말을 한다. 실지로 시인들의 시집을 읽어보면 시에 진정성이 많이 빠진 경우를 본다. ‘바로 그것이 되도록’ 쓰지 않고 ‘무엇무엇에 대해서’ 썼기 때문이다. 이런 시 치고 길이가 길고 수사나 표현이 현란해 어지럽기조차 하다.

전설의 가인(歌人) 최백호씨의 노래에 ‘낭만에 대하여’가 있다.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감동을 준다. 하지만 ‘대하여’는 거기까지다. 그것을 시에까지 들고 와서 대입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는 것이고 시집이 독자들 손에 쉽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손쉬운 예로 음식 이야기를 해보자. 다른 음식점에는 손님이 잘 드는데 유독 손님이 잘 들지 않는 음식점이 있다고 하자. 손님 탓인가? 음식점 주인 탓인가? 요리 연구가 백종원씨에게 물으면 대번에 답이 나올 것이다. 거리에 끼니때마다 배고픈 사람은 넘친다. 그런데도 손님이 들지 않으면 그것은 분명 음식점 주인의 탓인 것이다.

시집이 안 팔린다고, 독자가 없다고 세상을 탓하고 독자를 탓할 까닭은 없다. 시인들이 시를 읽기 어렵게 쓰니 독자들이 시를 읽지 않는 것이요, 시집이 안 팔리게 만드니 시집이 안 팔리는 것이다. 남을 탓하고 세상을 원망할 일이 결코 아니다. 확대해서 우리네 인생을 두고 생각해봐도 그것은 그렇다.

더러 인생이 지루하고 따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더러 인생이 고달프고 힘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나아가 우리네 인생이 불행하다고 절망적이라고 핀잔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그것은 지나치게 바깥 풍경만 보고서 하는 생각들이요 건성으로 인생을 살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 어떤 인생, 그 누구의 인생도 진지하지 않은 인생은 없고 아름답지 않은 인생은 없다. 남의 인생만 올려다볼 일이 아니다. 대중매체나 거리의 쇼윈도에 있는 인생은 결코 나의 인생이 아니다. 그런 겉치레 인생, 가짜 인생에 속을 일이 아니고, 또 속이지 말 일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인생은 나의 인생인 것이다.

코로나, 코로나의 우울과 감옥 속에서도 봄은 왔다. 풀꽃문학관 뜨락에도 꽃은 피어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도 봄에 피는 꽃들은 거의 모두 노랑이라는 데에 주목한다. 복수초, 영춘화(迎春化), 개나리, 수선화, 모두가 노랑이다. 아니, 하얀색 미선나무도 있고 백매(白梅)도 있기는 있었네! 다시 한번 기지개를 켜볼 일이다.

나태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