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감사위원 인사권 등을 놓고 충돌했던 신구 권력이 또다시 갈등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번에는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예비비가 새로운 뇌관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은 용산 이전을 위한 비용으로 496억원을 책정하고, 문재인정부가 예비비 형식으로 이를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와 정부는 안보 공백을 초래할 수 있는 합동참모본부 이전 비용 등을 제외한 31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조만간 집행하겠다는 방침이다.
청와대와 윤 당선인 측이 예비비 규모를 두고 평행선을 달리면서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만찬 회동 이후 수그러들었던 양측 갈등이 재점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윤 당선인 측 핵심 관계자는 4일 예비비 규모와 관련해 “310억원으로는 크게 부족하다”며 “기존에 책정한 예비비 496억원이 모두 확보돼야 이전을 위한 준비가 차질 없이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가 일부러 ‘300억원 지원설’을 흘리면서 집무실 이전을 계속 방해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르면 이번 주 내 310억원 규모의 예비비를 상정해 의결할 방침이다. 310억원은 당선인 측이 요구한 이전 비용 496억원 가운데 합참 건물 이전 비용(118억) 등을 뺀 금액이다.
이에 대해 당선인 측 관계자는 “예비비 310억원을 먼저 처리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원일희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수석부대변인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우리가 집무실 이전 비용으로 청와대와 현 정부에 요청한 액수는 처음부터 496억원”이라며 “예비비는 청와대와 현 정부가 결정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청와대에 공을 넘긴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496억원 전부를 마련해 줄 가능성은 크지 않다. 청와대 관계자는 “안보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예비비 집행이 어렵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집무실 이전 예산과 관련한 관계 기관 회의를 연 뒤 “추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에 따라 집무실 이전 예비비 안건은 5일 열리는 국무회의에는 상정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행정안전부는 “안보와 관련된 위기관리시스템 등에 대해서는 실무적인 추가 검토와 확인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며 “검토가 마무리되는 대로 이른 시일 내에 임시국무회의를 통해 예비비를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당선인 측 내부에선 현 정부와의 추가적인 충돌을 막기 위해 ‘310억원이라도 받자’는 주장도 제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와 더불어민주당의 갈등도 계속되고 있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인수위를 향해 “안하무인격으로 점령군 놀이에 빠져 법과 원칙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원 부대변인은 윤 위원장을 향해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수인계를 방해하고 발목을 잡는 듯한 언행은 삼가실 것을 촉구한다”고 반격했다.
박세환 김이현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