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황에 변화가 찾아왔다. 러시아군이 동남부 장악에 집중하면서 수도 키이우 일대에서 철수했다. 양국 협상에도 진전이 보여 러시아가 조만간 일방적인 승전 선언과 함께 전쟁을 끝내려 할 거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어떤 이유에서 비롯됐든 전쟁은 야만적인 것이다. 전투가 멎는다 해도 야만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키이우 외곽 도시 부차를 비롯해 러시아군이 점령했던 지역마다 집단학살 정황이 짙은 민간인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다. 두 손이 묶인 채 뒤통수에 총탄을 맞은 사람, 조준사격에 즉사한 어린이, 사체를 수백구씩 급하게 파묻은 집단매장지…. 러시아군의 점령 흔적을 살피고 있는 우크라이나 당국자들 입에서 하나 같이 절규가 터져 나왔다.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고한 죽음 앞에서 러시아의 행태를 ‘제노사이드(집단학살)’로 규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2차 대전 이후 전례가 드문 국가 간 전면전의 재발이었고, 명분 없는 침략전쟁의 부활이었다. 핵을 가진 나라의 무법한 행태에 세계는 군사적 응징을 자제하며 대응해 왔지만, 민간인에게 자행된 반인륜적 행위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전쟁을 맞닥뜨린 국제사회의 움직임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각기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한목소리로 규탄했고, 국익 침해를 감수하며 제재에 나섰다. 이제 구체적 책임을 물어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정치적 행위로서의 전쟁은 끝낼지언정 비인도적 범죄 행위였던 전쟁에 대해선 국제사법재판소를 비롯한 국제사회 역량을 총동원해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할 것이다. 어물쩍 넘어간다면 제2, 제3의 러시아가 반드시 나올 것이고, 그것이 북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은 이제 국제사회에 분명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선진국 대열에 섰다고 자부한다면, 국제질서를 세우고 인권을 보장하는 문제에서도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사설] 속속 드러나는 러시아 전쟁범죄 반드시 책임 물어야
입력 2022-04-05 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