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ball)들이 모여 자기 신세를 한탄하기 시작했다. 배구공이 먼저 말을 꺼냈다. “난 무슨 잘못을 했길래 허구한 날 따귀만 맞는지 모르겠다. 나는 정말 매일 죽고 싶어.” 그러자 축구공이 말했다. “넌 그래도 다행이다. 난 맨날 발로 까이는데. 발로 한번 채여봐. 진짜 기분 나쁘다구.”
가만히 눈치를 보던 꼬마 탁구공이 끼어들었다. “야~ 나는 매일 무슨 밥 주걱 같은 걸로 위에서 사정없이 내리치고, 옆으로 후려치고, 위로 쳐올리고,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주 죽을 맛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야구공이 한마디했다. “너희들 몰랐지. 사실 나는 매일 몽둥이로 쥐어터진다구. 이따금 실밥도 터지고…. 어휴 내가 말을 하지 말아야지.”
공들의 얘기를 잠잠히 듣고 있던 골프공이 입을 열었다. “너네들 쇠몽둥이로 맞아봤냐. 쇠몽둥이 진짜 아프다.” 그러자 다른 공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골프공의 말에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살다보면 누가 ‘나 죽겠네’라고 말해도 지금 내가 가장 힘든 사람인 것처럼 여겨질때가 많다. 그러나 사실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더 힘든 사람도 많다.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가장도 있고, 취업전선에서 번번히 낙방하는 이들, 하루 끼니를 해결해야 할 처지에 놓인 이들도 적지 않다.
나보다 더 슬픈 사람도 많다. 당장 러시아 침공으로 고향을 떠난 우크라이나 난민들만 보더라도 그렇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를 잃고도 어찌할 도리가 없다. 병원 문만 열어본다면 나보다 더 아픈 사람도 많다는 걸 금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같은 SNS를 보면 행복해 보이는 이들이 많다. 나보다 더 즐거워 보이고, 더 있어 보이고, 더 고민이 없어 보이고, 더 잘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은 다른 사람도 나를 보면서 똑같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
오늘 내가 힘든 이유는 뭘까. 혹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닐까. 누군가의 화려한 사진을 보면서 내 현실과 비교하는 건 아닐까. 나를 비교할 때 내 삶의 주인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남이 되고 만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는 존재와 하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신다는 ‘영적 성숙’은 먼 나라 얘기가 되고 만다.
나의 비교 상대가 타인이 되어서는 정신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기 어렵다. 오히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자신을 비교해야 한다. 다시 말해 예수님 만나기 전의 나와 예수님 만난 뒤의 나를 비교해야 한다. 점점 더 성화되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절대기쁨, 절대감사, 절대가치를 갖고 살아갈 때 변화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수월하다. 절대기쁨과 절대감사는 예수를 믿고 내 안에 천국이 임할 때 생겨난다. 내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이 임하면 주변 환경이나 사람과 상관 없이 절대기쁨과 절대감사가 넘쳐나게 된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이 말씀을 뜯어보면 ①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은 항상 기뻐하는 절대기쁨을 누린다. ②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는 절대감사를 하게 된다. ③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어려운 문제를 만났을 때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응답을 받는다. ④절대기쁨과 절대감사는 천국의 행복을 누리며 살게 만드는 하나님의 뜻이다. ⑤절대기쁨과 절대감사를 누리기 원한다면 예수를 영접하고 예수 안에 살아야 한다.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이자 주인으로, 인생의 왕으로 영접하자. 그리하여 주님이 내 안에, 내가 주님 안에 있게 되기를 바란다.
송상철 미국 애틀랜타 새한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