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한은 총재 청문회 관전법

입력 2022-04-05 04:08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에 호감이 생긴 건 그의 겸손함 때문이다. 한국인 최초로 국제통화기금(IMF) 고위직에 올라 주목받던 시절 그는 한 강연에서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과의 일화를 소개했다. 최 회장이 설립한 고등교육재단 지원으로 1989년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가 국내 대학 영입 제안을 받고 고민하던 시절 얘기다. 당시 재단 장학생들과 식사하던 최 회장은 ‘국내에 곧 들어올 것 같다’는 이 후보자 얘기를 듣고 갑자기 수저를 내려놨다고 한다.

“세계적인 석학들과 경쟁해 한국에도 유명한 학자가 나왔으면 해서 이 일을 하는 건데. 박사학위 받았으니 이제 나만 잘살겠다고 들어온다고 하니, 하는 일(장학사업)의 보람이 없다. 밥맛 떨어진다.” 최 회장의 꾸지람에 그는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국제기구에서 일할 수 있게 된 것도 경제적인 도움뿐 아니라 비전을 만들어줬던 분들 때문”이라며 공을 돌렸다. 그의 건강함도 부러웠다. 지난해 코로나로 고생했다고 하지만 이 후보자의 첫인상은 건장함 그 자체였다. 2008년 초 대통령직 인수위원이었던 그가 짬을 내 농구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는데 교수가 맞나 싶을 정도의 수준급 실력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사람 됨됨이만으로 통화정책 수장 적임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 지금처럼 국제 금융시장이 급변동하는 때에 국제기구 경험과 인맥을 갖췄다는 점은 분명히 장점이다. 하지만 그가 거시경제 전문가이지 통화정책 전문가는 아니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경제학의 천재로 불리는 로렌스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이 총애하는 제자라지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대해 쓴 논문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결정하기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만큼 통화정책이 시장에 주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올릴지 내릴지를 정확히 판단해야 하고, 그 정도와 시기도 중요하다. 결정도 어렵지만 평가는 더 혹독하기에 한은 총재가 느끼는 부담은 상상을 초월한다.

‘43년 최장수 한은맨’으로 지난달 말 퇴임한 이주열 전 총재는 최고의 통화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재임 시절 물가가 안정됐고, 지난해 미국보다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한 것 역시 주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권이 바뀐 뒤에도 연임될 정도로 시장의 신뢰가 높았지만 이 전 총재 취임 초기(2014~2015년) 잇단 기준금리 인하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당시 국제금리가 올라가는 상황이라 박근혜정부의 ‘부동산 경기 살리기’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결정이었다는 지적부터 부동산 투기를 부른 과도한 유동성의 원죄라는 비판까지 있었다.

문제는 이 후보자 앞에 놓인 환경도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물가 상승세는 계속되고 있다. 급증한 가계부채에 대한 경고음도 크다. 기준금리 인상 요인이 많긴 하지만 경기 침체 우려도 있어 판단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시장 신뢰가 중요하다. 새 정부가 곧 들어서고, 지방선거도 실시되지만 통화정책은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점을 각인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 시급한 것은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적임자임을 증명하는 일이다. 예상컨대 청문회에선 2008년부터 2009년 이 후보자의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시절이 주로 다뤄질 듯하다.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과 키코 사태 등에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으로서 어떤 결정을 내렸고, 또 입장은 무엇이었는지를 시장은 궁금해하는 분위기다.

한장희 편집국 부국장 jh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