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5년 뒤에도 ‘반도체 코리아’일까

입력 2022-04-04 04:06

인텔은 지난해 1월 최고경영자(CEO)로 팻 겔싱어를 선임했다. 인텔에서 칩셋 개발만 수십년 해 온 엔지니어 출신을 CEO로 선임한 건 지난날에 대한 반성이자 미래를 향한 반격 선언이었다.

스마트폰 세상이 되고, PC 시절 절대 강자였던 인텔에 위기가 왔다.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설계를 기반으로 퀄컴, 애플, 미디어텍, 삼성전자 등이 스마트폰용 칩셋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AMD는 엔지니어 출신 리사 수를 CEO로 영입하고 인텔을 추격하기 시작했다. 인텔은 토끼마냥 여유를 부렸다. 늘어지게 낮잠을 자도 이길 수 있다는 자만감은 기술개발을 등한시하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TSMC와 삼성전자가 초미세 공정 경쟁을 펼치며 10나노 미만으로 향할 때 인텔은 14나노에 정체됐다. 그동안 PC에 인텔 칩을 썼던 애플은 자체 반도체인 ‘애플 실리콘’으로 탈인텔에 나섰다. PC와 서버 시장에서는 AMD가 파이를 키우고 있다. 반면 인텔은 모바일 칩셋 시장에도 도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인텔은 겔싱어 CEO 취임과 함께 ‘제국의 역습’을 선언했다. TSMC와 삼성전자가 주도하는 파운드리 시장에 재진출했고, 엔비디아와 AMD가 양분하는 그래픽카드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기술의 인텔’을 선언하며 2025년에는 인텔이 초미세 공정에서도 가장 앞서갈 것이라고 선언했다.

인텔의 출사표가 과거에 취한 한물간 기업의 허세라고 보이진 않는다. 인텔의 반도체 설계 능력은 여전히 업계 최고 수준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반도체에 막대한 지원을 하겠다고 공언했다. TSMC와 인텔은 나란히 미국 애리조나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발표했다. 사막지대인 애리조나를 택한 이유는 법인세 감면 등 기업이 활동하기 좋은 조건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또 조 바이든 미국 정부는 520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지원 법안을 준비 중이다. 법안은 미국 상·하원을 통과했고, 최종 조율만 남았다. 인텔은 노골적으로 “미국 기업에만 지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동맹’인 대만 TSMC나 한국 삼성전자도 외면하진 않겠지만, 반도체를 안보로 규정한 상황에서 미국 기업인 인텔에 불리한 쪽으로 정책을 결정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기술력을 갖춘 거대 기업이 1위 탈환을 목표로 미국 정부의 지원을 업고 시장에서 공격적인 행보를 하는 셈이다. 우리에게 결코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최근 국내 반도체 업계의 상황을 보면 우려는 더 커진다. 인재 확보, 공장 건설 등 필요한 부분에서 속도가 안 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공장부터 연구개발(R&D) 센터까지 모두 수도권에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수도권 이하로 내려가면 인재가 안 온다”고 하소연한다. 비수도권 지자체는 반도체 공장을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이유다.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정원은 600명 수준에 불과해 인재 구하기도 하늘에 별 따기다. 수도권 대학이 ‘인구 집중 유발시설’로 분류돼 정원을 늘릴 수 없는 탓이다.

SK하이닉스가 2019년 2월 발표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는 3년이 됐는데 언제 완공될지 기약이 없다. 미국 신규 공장 건설이 2~3년 안에 끝나는 것과 대조된다. D램과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위상은 절대적이다. 앞으로도 뒤집어질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메모리 반도체도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며 계속 진화 중이어서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 게다가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 되려면 필수적인 시스템반도체는 이대로라면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