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전쟁은 모든 악의 씨앗이다

입력 2022-04-04 04:04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넘었다. 그동안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격에 수많은 우크라이나인이 사망했고 수백만명이 국외로 탈출했다. 러시아군은 학교, 극장, 쇼핑센터, 산부인과 병원 등 민간시설도 공격해 민간인 희생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전쟁 규칙’ 위반이다. 대표적인 전쟁 규칙이 제네바 협약인데 이 협약은 ‘전투의 범위 밖에 있는 자와 전투행위에 직접 참가하지 않은 자는 보호를 받아야 하고 존중돼야 하며 인도적인 대우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전쟁 규칙은 또 무차별적으로 대량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는데 러시아는 이 규칙도 위반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무기가 방사능 없는 핵폭탄으로 불리는 ‘진공 폭탄’으로 우크라이나에서 이미 사용됐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푸틴 스스로 ‘천하무적’이라고 자랑한 극초음속미사일 ‘킨잘’도 두 차례 발사했다. 킨잘은 음속의 5배 이상으로 날아가 기존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할 수 있어서 차세대 ‘게임 체인저’라 불리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그뿐만 아니라 인류 최악의 비핵무기라고 하는 ‘백린탄’도 투하했다고 한다. 전쟁 앞에서 인간의 생명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인간의 무기 만드는 기술은 점점 더 교묘해지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치명적이고 효과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무기를 개발하고 있다. 그 결과 원자탄과 같은 가공할 만한 무기가 만들어졌다. 핵폭탄이 아니라도 치명적인 파괴력을 가진 각종 무기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해 이러한 추세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최첨단 무기의 개발을 막을 방법은 없다. 인간의 지적 호기심이 과학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렇게 해서 발전한 과학 기술은 그 속성상 후퇴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공할 만한 살상 무기로부터 인류를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전쟁을 하지 않는 것뿐이다. 전쟁을 하지 않으면 무기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현대 전쟁은 옛날 전쟁과 다르다. 소총이나 기관총 또는 대포를 가지고 적과 대치하는 재래식 전쟁은 어느 의미에서 낭만적 전쟁이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전쟁이 일어나면 무시무시한 무기들이 무자비하게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간다.

‘전쟁은 인류를 괴롭히는 최대의 질병이다’ ‘모든 인류 죄악의 총괄이 전쟁이다’ ‘전쟁은 모든 악의 어머니다’라는 말이 있다. 그러니 어떤 명분으로도 전쟁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럴듯한 명분, 제법 설득력 있는 명분을 내세우고 전쟁을 일으켜도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명분 따위는 사라진다. 죽고 죽이는 전투가 벌어지는 현장에선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따질 겨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은 여지없이 무너진다. 이렇게 되면 제네바 협약도 아무런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

보라. 우크라이나의 남부 항구도시 마리우폴에서는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1000여명이 대피해 있던 극장을 러시아군이 폭격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러시아군은 산부인과 병원과 아동병원을 폭격하는가 하면 적십자 건물까지 폭격했다. 3월 29일 현재 마리우폴에서만 민간인 사망자가 5000명에 달한다고 하니 이것은 분명 제네바 협약을 위반한 전쟁범죄이다. 우크라이나의 대학도시 하르키우에 있는 대학교 대부분이 파괴됐고, 치르니히우에서는 빵을 얻으려 줄 서 있던 시민 10여명이 러시아군에 사살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분노를 넘어 슬픔이 차오른다. 이렇게 명백한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범죄를 저질렀다는 이유만으로 전쟁을 멈추게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전쟁은 비인도적이다. 전쟁을 수행하는 동안에는 어떠한 윤리나 도덕도 개입할 여지가 없다. 오직 파괴와 살상만 있을 뿐이다. TV 화면에 비친 한 장면. 구급대원들이 만삭의 임신부를 들것으로 옮기는 모습이 보이고 얼마 후 아기는 결국 죽은 채 태어났고, 산모도 30분 후에 숨졌다. 이것이 전쟁의 참상이다.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은 동물들이 하기에 적합한 일이다. 그런데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전쟁을 하지는 않는다.” 그렇다.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집단으로 동족을 죽이지는 않는다. 인간사회에서 전쟁은 사라져야 마땅하다.

송재소 성균관대 명예교수(퇴계학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