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굿굿즈]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 세계적 수준… 이젠 친환경으로 가야”

입력 2022-04-03 19:08
좋은 물건이란 무엇일까요? 소비만능시대라지만 물건을 살 때 ‘버릴 순간’을 먼저 고민하는 소비자도 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한 쪽의 노력만으로 이뤄지지 않습니다. 제품 생산과 판매단계를 담당하는 기업들의 노력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굿굿즈]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는 기업과 제품을 소개하고, 꾸준히 지켜보려 합니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더 많은 참여를 기대합니다.

한국콜마 패키지 스튜디오를 이끄는 김형상 상무가 지난 14일 서울 서초구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크기, 갯수가 같은 ‘종이튜브’와 ‘플라스틱튜브’의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을 비교해 보이고 있다. 왼쪽 비커는 종이튜브 20개, 오른쪽 비커는 플라스틱튜브 20개의 플라스틱 쓰레기 분리배출 결과다. 플라스틱튜브를 종이튜브로 바꾸면 플라스틱 사용을 80% 이상 줄일 수 있다. 권현구 기자

2021년 봄, 세상에 없던 물건이 만들어졌다. 50㎏ 넘는 무게를 견디고, 구기고 비틀어도 터지지 않으며, 물에 닿아도 찢어지지 않는 이것은 ‘종이로 만든 화장품 튜브’다. 어쩌면 이날의 성과는 훗날 ‘작은 혁명의 순간’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을 위한 실천이 절박해진 시대에 변화와 혁신의 가능성이 싹을 틔운 것이기 때문이다.

화장품을 담을 수 있는 ‘종이튜브’가 개발됐다는 사실은 물음표와 느낌표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짧게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2년까지 사용하는 화장품을 종이에 담아 안전하게 쓰는 게 가능한 일인가 의문부터 든다. 하지만 종이튜브는 개발됐고, 일부 제품에는 이미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에 따라붙는 것은 느낌표다. 화장품을 종이에 담아 사용하는 게 가능하다면 ‘플라스틱 줄이기’라는 시대의 사명도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혁신적인 친환경 제품을 개발한 곳은 화장품 제조업체 한국콜마다.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을 전문으로 하는 한국콜마의 패키지 디자인 부서 ‘패키지 스튜디오’는 2년여 동안 연구·개발에 매달린 끝에 종이튜브를 탄생시켰다. 종이튜브를 생각해내고, 개발해내고, 상용화까지 가능하게 만든 패키지 스튜디오의 수장 김형상(48) 상무를 지난달 14일 서울 서초구 한국콜마 종합기술원에서 만나 종이튜브 히스토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친환경 관련해서 공부하고 대화해보면 지금 제일 필요하고 빨리할 수 있는 일을 얼른 실천하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플라스틱을 덜 사용하고, 내 옆의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인 거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한다’는 심정으로 이 일을 진행해왔습니다.”

인터뷰는 종합기술원 1층의 ‘화장품 포장재 전시장’에서 이뤄졌다. 전시장 벽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각양각색의 화장품 포장재였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거의 모든 화장품 포장재가 전시된 곳이다. 우리나라의 화장품 포장재 기술은 세계 1, 2위를 다툰다. 10여개의 기본 소재를 활용해 수만가지 포장재로 변형 가능하다. 최근 20년 안에 이룩한 성과라면 성과다.

김 상무는 화장품 포장재를 집대성한 공간에서 200㎖ 길이의 기다란 비커 2개, 종이튜브 소재 20개, 플라스틱 튜브 소재 20개를 늘어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개의 비커에는 플라스틱이 담겨 있었다. 비커 하나에는 200㎖가 꽉 채워졌고, 다른 하나에는 40㎖가량 담겨 있었다. “플라스틱 튜브 20개를 사용하면 200㎖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게 됩니다. 같은 크기의 튜브를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바꾸면 플라스틱 쓰레기가 40㎖도 안 나와요. 종이튜브를 쓰면 본체에서는 플라스틱이 전혀 나오지 않고, 뚜껑에서만 나오기 때문이죠.”(사진 참조)

종이튜브를 사용하면 플라스틱튜브를 썼을 때보다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이 80% 이상 절감된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100㎏ 나올 게 20㎏ 나오는 셈이다. 소비재 업계에서 ‘플라스틱 줄이기’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벌이고 있는데, 종이튜브 사용의 효과는 드라마 같다고 할 수 있다.

종이튜브에 화장품을 담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안전성’이다. 화장품이 상하지 않는지, 찢어지거나 터져서 못쓰게 되지 않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안전성은 보장됐다. 종이튜브 개발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지점도 안전성이라고 한다.

“종이 안쪽에 화장품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도록 필름을 댔어요. 필름 레시피는 대외비고요(웃음). 생활 방수 기능이 추가된 종이를 필름과 합지해 쉽게 찢어지지 않고요. 여러 테스트를 해보니 어지간한 무게도 견디고 물도 견디는 걸 수많은 실험을 통해 검증을 했어요. 크림부터 팩, 선크림까지 다양한 제형을 담는데도 문제가 없습니다.”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종이튜브 원단을 만들 때도, 튜브 공정에 여러 방법을 시도할 때도 언제나 환영받지는 못했다. 업계의 사람들을 설득하며 일하는 게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2년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어요. 그만할까도 했는데, 뭐랄까,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칠 때마다 팀원들과 함께 ‘지구를 위해서 해보자’며 서로 다독이고 격려하고 그랬죠. 지구를 위해서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시간 여유가 많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면서요.”


그렇게 개발한 종이튜브는 안전하고,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을 크게 줄였으며, 분리배출도 쉽다. 종이튜브에 절취선을 만들어 쉽게 잘라낼 수 있다. 종이튜브를 잘라서 펼친 뒤 남은 화장품을 마지막까지 쓸 수 있다. 종이는 ‘타는 쓰레기’로 분리해 버리고, 뚜껑만 플라스틱(PP) 재활용 쓰레기로 버리면 된다. 1년 동안 화장품업계에서 쓰이는 튜브용기는 수천만개에 이르고, 화장품용기의 90%가 ‘재활용어려움’ 등급을 받는 걸 감안하면 획기적 변화가 가능해진다.

반응은 해외에서 먼저 나왔다. 지난해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IF·레드닷·IDEA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았고, 글로벌 패키지어워드에서도 수상 소식이 이어졌다. 김 상무는 “해외 고객사의 다양한 요청이 많아졌고, 올해는 본격적으로 해외 영업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국콜마는 현재 상용화 범위를 확대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고심 중이다.

김 상무는 현시점에 대해 ‘지난 20년의 포장재 개발 노력을 다시 되돌려야 하는 시기’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현재 생산되는 플라스틱 화장품 용기가 수만가지예요. 열심히 개발해서 양적 성장을 이뤘고, 세계 수준으로 도약했어요. K뷰티에도 큰 힘이 됐고요. 그런데 그 아이디어와 디자인 능력을 ‘친환경 방향’으로 틀어야 할 때입니다. 플라스틱 소재를 최소한으로 쓰고 쓰레기 배출을 줄여야 하는 게 지금 시대의 사명이니까요. 종이튜브가 그 역할을 어느 정도 담당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휴대전화로 QR코드를 스캔하면 국민일보 유튜브 채널(KMIB)에서 ‘굿굿즈’ 영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