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엘리엇 애커맨이 그를 만난 것은 지난주였다. 잡지에 기고할 우크라이나 상황을 취재하며 머물던 르비브의 숙소에 해병대 출신 미국인인 그가 흙투성이로 들어섰다. 2월 말부터 외인부대에 참여해 키이우 외곽에서 싸우다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압도적 열세인 우크라이나군이 어떻게 러시아군을 막아낼 수 있었는가. 당연히 화제가 됐고, 그는 세 가지를 꼽았다.
먼저 재블린. 미국이 제공한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은 매우 정확한데, 러시아 T90 탱크를 박살낼 만큼 파괴력도 크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이 탱크를 앞세워 도시를 점령할 때는 이라크 대전차무기 RPG가 탱크를 막지 못했지만, 지금은 철갑을 산산조각 낼 만큼 성능이 향상됐어요. 전투의 개념이 바뀐 겁니다. 러시아는 그걸 간과하고 기갑부대에 의존한 거죠.” 그는 말했다.
그리고 유연함. 러시아군은 철저히 중앙집중식 지휘통제를 받는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당한 이후 나토식 분산형 지휘체계로 개편했다. 중앙은 임무만 하달하고 수행은 현장 지휘관에게 맡기는 것이다. “러시아군은 상상력이 없어요. 우리 진지에 포탄을 퍼부었는데, 무력화에 실패하니까 똑같은 포격을 계속 반복하는 거예요. 반대로 우크라이나군 작전은 매일 달라집니다.”
끝으로 사기. 러시아군은 바닥이고, 우크라이나군이 매우 높다는 건 알려져 있다.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우크라이나 병사들이 매복 공격을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기다립니다. 끝까지. 러시아군이 코앞에 올 때까지 기다려 덮칩니다. 두려운 게 없는 거예요.”
우크라이나 병사들에게 두려움보다 앞서는 무언가를, 애커맨은 가족과 나라를 지키자는 일치된 생각이라고 해석했다. 하나의 목표를 가진 군대와 등 떠밀려 나온 군대, 국론이 통합된 나라와 리더십에 회의론이 커져 분열된 나라의 전쟁에서 병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요즘 한국 정치에 국민 통합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지겹도록 이어지는 이유를 우크라이나 전황이 설명해주고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