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한국 경제 뇌관으로 꼽히는 개인사업자대출 문제의 해법 중 하나로 ‘배드뱅크(Bad Bank)’ 설립을 검토한다(국민일보 3월31일자 17면 참조). 대출금을 떼일 우려가 있는 은행의 부실을 막고, 자영업자는 긴 호흡으로 빚을 상환하며 재기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방침이다. 개인사업자대출 부실이 본격화할 경우 제 역할을 할 대안 중 하나로 꼽히지만 적지 않은 규모의 나랏돈 투입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인수위 관계자는 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인수위에서 개인사업자대출 문제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로 배드뱅크를 검토할 예정”이라면서 “배드뱅크는 자영업자 신규 자금 지원, 저신용 자영업자 대환 대출 등과 함께 지원책 패키지 중 하나로 검토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도 지난 31일 분과별 업무 보고에서 “배드뱅크를 만드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배드뱅크란 시중은행 등 금융사가 보유한 개인사업자대출 채권 중 부실화 징후를 보이는 것만을 사들여 도맡아 관리하는 전문 기관이다. 배드뱅크가 부실 채권을 도맡으면 시중은행은 건전 채권만 보유한 ‘굿뱅크’로 남을 수 있다. 배드뱅크는 부실 채권을 장기간 보유하며 회수할 수 있어 자영업자 상환 기한도 늘려줄 수 있다. 은행 부실 전이 차단과 자영업자 재기 지원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다는 평가다.
앞서 경제 위기가 닥쳤을 때도 배드뱅크가 활용된 바 있다. 김대중 정부는 지난 1997년 ‘부실채권정리기금’을 만들어 외환 위기의 충격파를 맞은 개인·기업의 부실 채권을 정리했다. 신용카드 대란을 겪었던 노무현 정부는 2004~2005년 ‘한마음금융’과 ‘희망모아’를 설립했고, 미국발 세계 금융 위기를 맞닥뜨린 이명박 정부는 2008년 ‘신용회복기금’을 통해 신용 7~10등급 저신용자를 구제했다.
문제는 배드뱅크 설립 재원이다. 금융권의 부실 채권을 사들일 배드뱅크의 자본금을 조성하는 데는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채권 보유 은행도 출자에 일부 참여하지만 정부와 국책은행이 ‘큰 짐’을 져야 한다. 부실채권정리기금 조성 당시에는 나랏돈 40조원이, 신용회복기금에는 10조원이 투입됐다.
재원이 얼마나 필요할지는 윤곽조차 그려지지 않는 상황이다. 잠재적 부실로 볼 수 있는 만기 연장·상환 유예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지난 1월 말 현재 133조원을 넘겼다. 2월 말 기준 4대 시중은행이 보유한 코로나19 관련 개인사업자대출 규모는 206조원에 이른다.
새 정부가 구상하는 배드뱅크는 정부·은행권·소상공인진흥재단 등이 공동 설립해 만기가 30년 안팎인 주택담보대출처럼 상환 기한을 연장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한재준 인하대 경영대학 교수는 “배드뱅크 설립은 자영업자 구제 차원에서라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면서도 “코로나19로 인한 개인사업자대출 부실은 상시적인 위험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조직을 설립하기보다는 서민금융진흥원 등 기존 기관을 활용하는 편이 낫다”고 말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