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세 꺾인 그래픽카드… 미국·EU, 가격 줄줄이 인하

입력 2022-04-01 04:03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그래픽카드 가격이 하향세로 돌아섰다.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채굴방식 변경으로 그래픽카드 수요가 감소하는 움직임이 본격화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인텔은 노트북용 아크(Arc) 외장 그래픽카드를 출시했다고 31일 밝혔다. 삼성전자 갤럭시 북2 프로를 시작으로 전 세계 주요 노트북에 탑재된다. 데스크탑 PC용 외장 그래픽카드는 올해 여름 본격적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그동안 엔비디아와 AMD가 양분하고 있던 그래픽카드 시장에 인텔이 뛰어들면서 공급 부족이 해소되고, 그래픽카드 가격이 안정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커진다.

IT매체 아스테니카 등은 대만 전자제품 업체 에이수스가 미국 시장에서 엔비디아의 RTX 30 시리즈 그래픽카드 가격을 최대 25% 인하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적용 시점은 4월 1일부터다.

이번 가격 인하는 미국의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면제 부활과 관련이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지난 23일 중국산 제품 549개 중 352개 품목에 대한 관세면제를 다시 적용키로 했다. 전자제품인 그래픽카드도 면제 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다른 업체들도 조만간 가격 인하 대열에 합류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미·중 관세와 무관한 유럽에서도 그래픽카드 가격 인하 흐름이 감지된다. IT매체 톰스가이드에 따르면 유럽연합(EU) 그래픽카드 가격은 3월에만 25% 하락했다. EU지역 그래픽카드 평균 가격은 1분기 전까지만 해도 권장소비자가격(MSRP)보다 80% 이상 높았지만, 이제는 25% 수준까지 접근했다.


가격 하락이 이어질 징후는 또 있다. 베스트바이 등 미국 유통망에 그래픽카드 재고가 쌓이기 시작하고 있다. 그동안은 재고가 없어서 가격이 계속 올랐는데, 최근 들어 수요·공급 균형이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래픽카드 시장 변화는 공급보다 수요 변화쪽에 원인이 있다. 핵심은 암호화폐 이더리움의 채굴방식 변화다. 그동안 이더리움은 블록체인에 참여해 검증에 기여한만큼 보상을 받는 ‘작업 증명(PoW)’ 방식으로 채굴됐다. 그래픽카드의 연산성능이 뛰어날수록 많은 양의 이더리움을 얻을 수 있었다. 때문에 고성능 그래픽카드는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소비자가 아닌 채굴장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더리움 재단이 채굴방식을 앞으로 보유하고 있는 이더리움 자산에 비례해 채굴 권한을 부여하는 지분증명(PoS) 방식으로 바꾸기로 하면서 더는 이더리움 채굴을 위해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필요하지 않게 됐다. 채굴 방식 변경은 올해 상반기 중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그래픽카드 시장이 완전히 정상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그래픽카드를 필요로 하는 채굴방식을 택하는 암호화폐가 많이 있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채굴업자들이 기존 이더리움 방식대로 채굴할 수 있는 암호화폐로 이동할 경우 그래픽카드 시장은 계속 혼란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