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규제개혁부’ 만들자는 학계 제안 귀담아 들어야

입력 2022-04-01 04:03
도로 위 전봇대, 손톱 밑 가시, 신발 속 돌멩이…. 한국 경제의 고질적 병폐인 과도한 규제는 다양한 비유를 만들어냈다. 이명박정부는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정부는 가시를 빼겠다고 했다. 문재인정부는 뽑거나 빼는 차원을 떠나 샌드박스라는 멋진 용어를 고안해내며 기업인이 규제 없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만들어주겠다고 했었다. 15년에 걸쳐 세 정부가 이렇게 했으면 불합리한 규제는 이제 흔적도 없어야 할 텐데, 그것은 잡초와 같은 생명력을 갖고 있었다. 곧 들어설 윤석열정부도 신발 속 돌멩이를 꺼내겠다며 규제 개혁의 새로운 비유를 꺼냈다. 규제의 철옹성을 대중이 절감한 것은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통해서였다. 문재인정부에서 독소적인 규제를 바꾸려고 청와대와 정부와 국회를 부단히 드나들었지만, “그래도 안 되더라” 하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 채 물러났다.

우리 학계의 경제·경영·정치·사회 4대 학회가 31일 ‘새 정부의 과제’를 주제로 진행한 공동학술대회에서 규제 개혁에 다시 초점을 맞춘 것은 이런 경험 때문이었다. 새 정부도 규제 혁파에 실패한다면 한국 경제·사회의 체질을 바꾸기는 더욱 요원해진다는 우려가 반영돼 있다. 이경묵 서울대 교수의 주제발표에 핵심적인 내용이 들어 있었다. “규제를 새로 만들려는 공무원은 많은데, 그것을 없애는 게 본업인 사람은 없어서 규제가 늘 수밖에 없다.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 틀을 바꾸고 부총리급 규제개혁부를 설치해야 한다.” 역대 정부마다 규제 개혁에 실패한 이유가 규제를 만드는 게 본업인 공무원들에게 그것을 없애라고 말만 해왔기 때문이란 것이다. ‘규제개혁부’를 만들자는 것은 독버섯 같은 규제를 깨뜨리는 것이 본업인 이들을 키우자는 뜻이고, 이를 부총리급 부처로 하자는 것은 그 정도는 힘을 실어줘야 조금이라도 바뀔 수 있다는 의미다. 새 정부가 반드시 귀를 기울여야 할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