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17’은 1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다룬 작품이다. 영국군 병사가 서부전선 최전방 부대에 ‘공격 취소’ 명령을 전달하러 가는 과정을 그린다. 아군의 참호를 벗어나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생사의 갈림길.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주인공과 동료들은 이런 인사를 나눈다. “굿 럭(Good Luck, 행운을 빈다).”
아이러니하게도 1917년의 어느 날과 오늘날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명령을 거부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는 주인공은 진흙과 강물에 켜켜이 쌓인 시신을 헤치고 나아간다. 매일 새로운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공표되는 기묘한 풍경 속에서 일상을 이어가는 우리의 모습이 겹친다. ‘운 좋게’ 감염을 피해가길, ‘운 좋게’ 증상이 경미하길, ‘운 좋게’ 제때 치료를 받길. 나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어느 정도 운에 기대어 살아가는 것도 비슷하다. 홀로 사선을 내달리는 병사처럼 위태로운 각자도생이다.
국내 누적 확진자는 지난달 22일 1000만명을 넘었다. 국민 5명 중 1명은 코로나19를 겪었거나 겪고 있는 셈이다. 주위에 확진자가 늘어나면서 간접 경험도 늘었다. 검사를 받기 위해 수 시간을 기다리고, 보건소와 통화하려 종일 전화기를 붙들었다는 건 예사다. 비대면 진료를 한다던 병·의원이 “모르는 일”이라고 답하거나 그 정도 증세로는 응급차를 보내기 어렵다는 119대원과 실랑이를 벌였다는 말도 들린다. 음성 판정 뒤에도 잔기침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하거나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많은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감염보다 전파의 매개체가 되는 것이 더 두렵다. 어머니는 기저질환은 없지만 어린 시절 천식을 앓았다. 불안한 마음에 ‘60대 코로나 증상’ 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면 위중증 환자 보호자들의 간병 기록이 쏟아진다. 증상을 알아챈 지 얼마 되지 않아 급속도로 상태가 나빠졌다는 사례가 대다수다. 코로나19는 노출된 바이러스의 양, 기저질환, 나이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발현된다. ‘병원에 걸어 들어가셨는데 생사를 오가게 될 줄 몰랐다’며 눈물짓는 보호자에게 “치명률은 계절독감 수준”이라는 정부의 말은 설득력이 없다.
두세 달 사이 정부 지침은 얼마나 빠르게 바뀌었는지 따라잡기 벅찰 정도다. 완화된 거리두기만큼 중요한 건 확진자 관리에 대한 변화다. 재택치료자 중 일반관리군 범위는 점점 넓어져 50대 기저질환자,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로 확진 판정을 받은 60대 이상·면역질환자까지 확대됐다. 고위험군도 유선 모니터링 없이 스스로 건강을 체크하고 병원을 찾아야 한다. 위중증 환자의 격리해제 기간은 20일에서 7일로 단축됐다. 증세가 나아지면 코로나19 중증 병상에서 권고 없이 퇴실 명령도 가능하다. 바이러스와의 전쟁은 이제 개인의 사투가 됐다.
방역 체계를 전환한 건 위중증 환자 관리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들은 정부가 자신들의 존재를 지우고 있다고 호소한다. 짧은 격리기간이 끝나면 전파력이 없다는 이유로 전담병상에서 내쫓기고 병원비 지원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격리해제 후 중증 치료를 받거나 사망하는 인원은 코로나19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지난달 23일 기자회견에서 한 보호자는 “중환자실에서 사투를 벌이는 환자들이 기저질환으로 치료받고 있다는 정부의 논리대로라면 저희 어머니의 기저질환은 코로나인가”라고 되물었다.
K방역을 유지했던 힘, 공동체 안전을 지키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사회적 연대가 흔들리고 있다. ‘알아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위기감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백영경 교수는 ‘마스크가 말해주는 것들’이라는 책에서 “개인들이 각자도생을 추구하면서 의료를 시장에서 구매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서비스 상품으로만 생각하는 사회에서는 국가의 힘으로 전염병을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회의 면역체계는 단지 공공병원 확보 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공공성과 연결돼 있다는 분석이다.
백 교수는 반복될 감염병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공동체의 필요에 반응하고 움직일 수 있는 시민’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을 아울러 조직하고 동원할 수 있는 거버넌스’ ‘이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가 요구된다고 했다. 새 정권은 이런 정치를 보여줄 수 있을까. 이 역시 운에 맡겨야 하는가.
박상은 온라인뉴스부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