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는 다리가 열 개, 문어는 여덟 개, 개미는 여섯 개, 개는 네 개, 사람은 두 개, 돈벌레는 서른 개. 생물체 다리 개수를 배운 어린 딸이 왜 함께 사는 개는 다리가 셋뿐인지 문소리 배우에게 묻곤 했다. 사고로 다리 하나를 잃은 반려견을 이상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세 발로 하는 산책’은 이 질문에서 비롯된 책이다. 반려견 달마는 세 발로도 잘 뛰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지만 산책 중에 만난 낯선 사람들은 달마를 손가락질했다. 책을 출간한 뒤 독자와 만난 자리에서 문 배우는 휠체어를 타고 생활했던 촬영 현장의 이야기를 꺼냈다.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데뷔작 ‘오아시스’의 현장 이야기다. 장애인 역할의 배우는 종일 휠체어에 앉아 있어야 했다. 쉬는 시간에도 휠체어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때 받았던 강렬한 느낌은 잊지 못하는데, 낮은 눈높이에서 바라본 세상은 위압적이었다. 상점 간판들, 계단들, 사람들이 편리하게 사용하는 모든 시설이 달라 보였다. 휠체어에 탄 사람에게 간판은 어지러이 쏟아질 듯 보였다. 경사로 없는 계단은 아예 벽이었다. 문 배우의 목소리가 마음에 남았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시위는 몇 년째 지속해 왔다.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대중교통을 남들처럼 이용하겠다는 목소리에 문 배우의 이야기가 겹쳐 들렸다. 마침 읽고 있는 책은 세계 장애인 운동의 리더인 주디스 휴먼의 자서전 ‘나는, 휴먼’이다.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내 얼굴이 정확히 다른 사람들의 엉덩이 높이에 있게 되어 누군가 허리를 숙여주지 않으면 대화가 어려웠다. ‘장애 세계’와 ‘일반 세계’의 분리는 내가 채워가야 할 깊은 틈새를 만들어냈다.” 주디스의 고등학교 시절 고백이다.
그는 장애를 이유로 다섯 살에 학교 입학을 거부당했다. 아홉 살이 돼서야 ‘건강보호 21’ 프로그램으로 지하실 특수교육반에서 교육받았다. 이 프로그램 출신으로 유일하게 고교에 진학한 주디스는 존재가 지워진 사람 혹은 아픈 사람 취급하는 동급생들을 상대해야 했다. 주디스가 대학생이 됐을 때 베트남전쟁은 세계를 바꾸고 있었다. 전쟁에서 사람들이 죽어갔고, 부상을 입고 돌아왔다. 후천적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장애란 의료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주디스는 일찍 깨우친다. 장애는 누구든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실제 이 진실을 중심으로 사회 인프라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옳았다. 주디스의 삶은 장애인이 시민이 되는 역사였다. 미국 뉴욕시 교육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교사 면허를 취득하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재활법 개정안 서명 거부에 항의하며 맨해튼 거리 시위를 주도했다. 재활법 504조 시행 규정에 서명하지 않는 보건교육복지부 장관에게 항의하기 위해 연방정부 건물을 24일간 점거한 끝에 서명을 끌어냈다. 클린턴과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한 미국 최초의 장애 권리 행정가이기도 했다.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 교사 자격증 취득을 거부당하는 것, 보호자 없이 홀로 비행기 탑승을 할 수 없는 것, 수시로 맞닥뜨리는 장벽이 의학적 장애 문제라고 치부될 수 없다는 걸 주디스는 증명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왜 우리는 장애를 인간의 다른 여러 측면과 달리 보는가.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다른지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우리 모두가 함께 추구하는 목적에 초점을 두었다. 우리 각자를 초월해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인간성을 존중했다. 공동체, 평등과 정의에 대한 사랑을 옹호했다.”
주디스의 목소리가 한국의 지하철에서도 울려 퍼진다. 이기적 행동이 아니다. 공정성의 문제다. 접근 기회의 형평성에 대한 이야기다. 눈에 보이는 장애인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인도, 그가 누구든 우리 사회의 구성원이다. 당신도 나도 인간이다. 한 인간이 다른 사람의 호의로 배려받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제도적으로 존중받기를 원한다. 우리는 이 사회 공동체가 인간 존중의 세계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가. 나는 당연히 원한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