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구중궁궐을 떠나는 법

입력 2022-04-01 04:03

청와대 춘추관에서 본관 쪽으로 향하는 인도는 일반인이 걷지 못한다. 이 인도를 걸어가면 소총을 멘 경찰이 행선지와 소속을 묻는다. 일반인은 길 건너편 경복궁 신무문 방면의 인도를 이용해야 한다. 청와대를 배경으로 하는 기념사진은 보통 신무문 앞에서 길 건너 청와대 본관을 바라보며 찍는다. 청와대는 철제 담장 사이로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백악관과 접근성이나 개방감부터 확연히 다르다.

문재인 대통령도 청와대를 무척 떠나고 싶어했다. ‘광화문 대통령’을 표방하면서 정부서울청사로의 집무실 이전 가능성을 끊임없이 타진했다. 2019년 1월 유홍준 광화문대통령시대특위 자문위원이 “청와대 영빈관과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찾지 못했다”며 공식적으로 무산 사실을 발표할 때까지 무려 1년8개월이나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취임식이 열리는 5월 10일 청와대를 국민 품으로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두 달도 안 되는 기간 집무실·국방부·합참의 연쇄 이전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많은데 그는 정말 청와대에 한 발도 들일 생각이 없어 보인다. 윤 당선인은 제왕적 대통령제 원인을 공간에서부터 찾았다.

청와대는 정말 구중궁궐인가. 문재인정부 들어 청와대 주변 도로가 24시간 개방됐고, 문 대통령은 본관 집무실 대신 참모들이 근무하는 여민관 집무실로 내려와 업무를 봤다. 청와대 경내 관람객도 크게 늘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국민 여론과 시·공간적으로 분리되는 특성은 변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경내 관저에서 집무실로 출근하고 외부 인사를 경내로 불러 만난다. 외부 행사는 경내에서 헬기를 타거나 전용차를 이용해 이동하는 게 대부분이다. 문 대통령은 매일 언론 보도를 꼼꼼히 챙겨보는 것으로 유명했지만 직접 국민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현저히 적었던 건 분명한 사실이다. 언론 보도, 참모 보고, 정례 회의, 약간의 사적 회동으로 세상을 평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문 대통령은 정권 후반부 기자회견마저 극도로 피하는 바람에 직접 질문에 맞닥뜨릴 계기가 매우 적었다. 대통령 행사에 동행한 풀 취재단도 대통령에게 질문하지 못하거나 엄격한 보도 제한 조치와 싸워야만 한다.

이렇다 보니 청와대 인근 국가정보원 안가라거나 서별관회의라거나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공간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국민적 호기심과 공분이 청와대로 모이곤 했다. 역대 대통령이 모두 청와대를 나가려 했던 이유이자 막상 청와대에 들어가면 쉽게 나가지 못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싫든 좋든 청와대의 아늑하면서도 비밀스러운 생활이 주는 만족감에 결국은 안주했다.

정부서울청사가 아닌 용산 국방부 청사 선택은 신선한 면이 있다. 윤 당선인이 정치인 출신이 아닌 덕분에 대통령이라는 직위, 청와대라는 공간이 주는 무게감을 쉽게 벗어던질 수 있었다고 본다. 문제는 태도다. 용산 이전을 관철하려는 윤 당선인의 정치적 태도는 우려스럽다. 정치적 자산과 인맥이 없는 그는 집권 내내 여러 어려움에 부닥칠 것이다. 여소야대 국회, 코로나19 극복, 갈수록 야만스러워지는 외교 환경까지 정말 뭐 하나 쉬운 게 없다. 결국 협치해야 할 텐데 윤 당선인의 일도양단 태도는 득보다 실이 많아 보인다.

집무실 이전에 반대하는 국민이 많다는 여론조사까지 나온다면 적어도 반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게 순리다. 일단 청와대에 들어가면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는 이해하지만 그의 조바심을 걱정하는 국민도 많다. 지난 대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보다 단 0.7% 포인트 더 표를 얻었을 뿐이다. 국민 통합을 위해선 돌아가더라도 합리적 절차가 우선이다. 부디 조바심을 내는 게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란다.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