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주 하나님을 만나다] 고난의 십자가 품고 하늘의 부활을 향하다

입력 2022-04-02 03:03
경기도 가평 생명의빛예배당은 834개 홍송을 활용해 돔 형태를 이루고 있다. 세상을 의미하는 돔에 창세기 1장 궁창의 의미를 더했다. 폴리카보네이트 외벽으로 들어온 햇빛은 공중에 매달린 홍송을 통과해 예배당 중앙 십자가로 향한다. 십자가가 있는 원형 수조 아래엔 프랑스 조각 거장인 장 파트리스 울몽의 작품(아래)이 있다. 이 조각은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준다. 가평=장진현
가평=장진현

중력이 존재하지 않는 듯 수백 그루 홍송이 공중에 매달려 숲을 이룬다. 나무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 햇빛은 땅의 공간을 밝힌다.

영적 감동에 압도되는 곳, 생명의빛예배당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설곡리 길이 끝나는 봉미산 중턱에 있다. 예배당은 선교센터 내 3층 330㎡ 면적에 300석 규모로 건립됐다. 2014년 5월 말 완공식을 가졌고 ‘월드아키텍처페스티벌2015’에서 종교건축 분야 7곳 중 한 곳으로 선정됐다. 하이패밀리의 ‘국내 신(新)성지순례 코스 6곳’에도 이름을 올렸다.

이번 순례길엔 생명의빛교회 하룡 목사와 시공에 참여한 케이돔 최승렬 대표가 함께했다. 설계자인 그로노블국립건축대학 신형철 교수는 프랑스에 있어 SNS로 만났다. 남서울은혜교회 홍정길 원로목사도 첨언을 아끼지 않았다.

세워진 홍송에 부활 담아

생명의빛예수마을은 은퇴선교사가 조용히 묵상하며 기도하는 공간이다. 2008년 남서울은혜교회 담임이었던 홍 목사가 신 교수에게 설계를 의뢰할 때 강조한 것도 “소박하지만 영적 감동은 충분한 공간”이었다.

선교사 거주공간을 마련하기 전 예배당부터 짓기로 했다. 유리와 폴리카보네이트 등 일반 현대건축과 유사한 선교센터 외관에 방심하면 안 된다. 3층 예배당에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광경에 압도당한다.

프랑스 그르노블국립건축대학 디자인과 신형철 교수는 홍송을 세워 돔 형태를 만드는 예배당을 설계했다. 도면엔 1층 울몽의 조각 작품이 있는 장소가 3층 예배당의 십자가로 연결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신형철 교수 제공

신 교수는 “예배당엔 원구형의 돔, 원형의 좌석 배치, 수직으로 선 홍송 기둥 등 3가지 특징을 결합해 종교적 공간의 영적 감동을 세우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 JK건설의 이장균 사장이 홍송 제공을 약속한 터라 소재는 목재가 됐다.

긴 자작나무 의자를 둥근 선을 따라 배열하며 원형의 예배당을 표현했다. 신 교수는 “원형은 연합을 상징하고 성직자와 평신도의 분리를 평등화시킨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는 예배당 중심엔 둥근 수조가 있고 그 가운데 십자가가 서 있다. 하 목사는 “수조에 물을 담아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갈릴리 호수를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십자가엔 예수의 고난을 표현했다. 가느다란 알루미늄 봉을 14일간 용접봉으로 지지고 파내며 긁었다. 빈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십자가는 햇살을 받으며 빛을 드러낸다.

무엇보다 영적 감동을 주는 건 예배당 공간 자체다. 세상을 상징하는 돔 형태에 창세기 1장 6절에 나오는 궁창의 의미를 부여했다.

원구형 음각의 돔을 표현한 건 834개 ‘세워진’ 홍송 통목이다. 살아있는 나무의 형태인 수직은 부활을 뜻한다. 홍송과 철골 프레임을 연결해 돔을 구현하기로 했다. 사포질을 해 홍송 무늬도 살렸다. 시공자인 케이돔 최승렬 사장은 “인장력이 강한 스틸 격자 구조로 상·하부를 잡고 흔들림을 방지했다”고 설명했다.

엄청난 힘을 받아야 하는 기둥은 철근이 아닌 탄성이 있는 나무, 홍송을 사용했다. 최대 1200년 된 홍송 193개를 7개월간 세웠다. 동서남북 출입구에 선 기둥은 4개월간 전국을 누비며 찾은 캐나다산 더글러스 나무다. 홍송 중엔 둘레만 4m 이상 되는 대형 통목이 없었다. 강대상 뒤 두 개의 더글러스 나무엔 하나님의 성전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를 뜻하는 손바닥 모양이 있다.

홍송 기둥과 짝을 이룬 금속 알루미늄 파이프는 기둥이 아니다. 냉난방 열이 뿜어져 나오거나 간접 조명 역할을 한다. 최 사장은 “자연 건조된 나무는 여전히 살아 있어 송진이 나오고 스스로 습도를 조절한다”면서 “철골과 연결된 나무들이 밤이면 ‘뻥’ ‘쩡’ 굉음을 내며 자리 잡았다. 2년간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며 불안한 밤을 보냈다”고 전했다.

공간이 주는 감동은 엄밀히 말해 1층 소예배실부터 시작된다. 구석진 곳에 자리한 프랑스 조각 거장 장 파트리스 울몽의 작품이다. 홍송 통목에 조각칼로 새긴 텍스처는 하나님께 가는 계단이다. 작품이 자리한 곳은 2층을 관통해 3층으로 연결된다. 작품 바로 위 둥근 천창은 3층 수조의 바닥이다. 생명의빛교회 담임인 하룡 목사는 “울몽의 계단을 통해 십자가로 올라가 하늘의 하나님께 간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매월 1000여명이 ‘생명의빛예배당 방문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예배당의 감동은 외부로도 연결된다. 3층엔 도예가 박부원 명장의 여섯 개 달항아리가 있다. 순종한 가나의 혼인잔치의 일꾼들(요 2:6~8)을 표현했다. 매시 정각마다 아름다운 찬송이 울려 퍼지는 종탑도 평안함을 준다.

생명의빛예수마을 겟세마네 동산에 마련한 14채 기도실 중 예수님 방은 사선으로 창을 내어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가평=장진현
가평=장진현

예수마을 초입의 겟세마네 동산은 기도의 공간이다. 길을 따라 24개 언어로 적은 성경말씀을 만날 수 있다. 푸른색 유약으로 누가복음 22장 39~46절, 로마서 5장 19절, 요한복음 3장 16절을 손 글씨로 적어 구워낸 타일을 이어 붙였다. 동산 곳곳엔 노출 콘크리트 형식으로 작은 기도실이 14채 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 바울의 이름을 붙였고 크기는 제각각이다. 1인용도 있고 최대 5명까지 들어가는 기도실도 있다. 예수님 방은 자작나무를 쌓아올린 뒤 방이 될 공간을 파내 듯 만들었다. 천장은 십자가 모양을 뚫어 빛이 들어오도록 했다.

기도의 힘으로 세웠다

건축의 매 순간 하나님 은혜도 경험했다. 홍 목사는 러시아 연해주에 갔다가 우연히 JK건설 이 사장을 만났다. 러시아 나홋카에서 성공한 그는 자신이 모은 홍송을 홍 목사에게 보여줬다. 홍 목사는 “평생 그렇게 좋은 나무는 처음 봤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비기독교인인 이 사장이 “홍송으로 예배당을 지으려고 한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가출해 사업으로 성공한 뒤 고향에 돌아간 그는 폭설이 내린 새벽에도 교회로 가는 어머니를 봤다. 어머니는 이 사장에게 “(네가) 가출한 뒤부터 새벽기도를 했다”고 한다. 이후 나홋카에서 홍송을 본 어머니는 “하나님을 위해 집 지으라”는 말씀을 하시고 얼마 후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유언이 된 말씀에 따라 이 사장은 홍 목사에게 홍송을 기증했다.

건축가인 신 교수가 설계에 나선 데도 특별한 사연이 있다. 5살 때 화가인 아버지 신성희 작가를 따라 프랑스로 간 그는 가족여행 중 종교 건축의 걸작이라 불리는 롱샹 성당에 갔다가 감동을 경험했다. 12살 아이는 그곳에서 “이런 예배당을 짓고 싶다”며 눈물로 기도했다. 23년 후 그는 프랑스 국립베르사유대학 건축과를 나와 건축가가 됐다.

홍 목사는 신 작가 부부에게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설계를 의뢰했다.

생명의빛예수마을에 들어서기 전 만나는 베드로 카페는 신형철 교수가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이 공동 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에서 수상한 작품이다. 폐선을 활용한 이 카페에서 판매되는 수익금 일부는 밀알재단에 기부된다. 가평=장진현

생명의빛예배당은 신 교수가 한국에 선보인 처녀작이다. 2016년엔 국립현대미술관과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이 공동주최한 ‘젊은 건축가 프로그램 2016’에서 템플(Temp’l)로 수상자가 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예수마을 입구 베드로카페로 구현됐다.

기도로 세워진 예배당과 생명의빛예수마을은 은퇴선교사의 쉼터인 동시에 다문화 사역의 공간이 됐다.

가평=서윤경 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