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할머니’가 있었다. 트렌치코트를 입고 매일 서울 정동 맥도날드에 앉아 밤을 새우던 고령의 여성 홈리스. 2010년대 초 방송에서 그녀의 사연을 보도한 후 꽤 화제가 됐다.
작가 한은형이 맥도날드 할머니 이야기를 장편소설로 썼다. 그녀의 이름은 김윤자.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벤치에 앉은 모습으로.
“이 추운 겨울에 혼자서… 벤치에서… 그런데 앉아서?… 어떻게 그럴 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고서야 앉아서 맞는 죽음이란, 그것도 겨울의 눈 쌓인 벤치에서 맞는 죽음이란 아주 낯선 것이었다. 그래서 경이로웠다.”
김윤자는 작가가 방송을 보고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소설은 김윤자의 죽음으로 시작해 그의 마지막 1년을 되짚어간다. 김윤자의 행적이나 대화에는 방송에 나온 내용이 섞여 있지만, 대부분은 작가가 상상해낸 것이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은 ‘맥도날드 할머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을까’라는 궁금증이다. 한국에선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아주 새로운 캐릭터의 노인이었기 때문이다.
김윤자는 홈리스였고 길 위를 떠돌면서 마지막 5년을 살았지만 노숙을 하진 않았다. 대신 정동 맥도날드에 꼿꼿이 앉아 밤을 보냈다. 그러다 새벽이 되면 다시 거리로 나갔다. 광화문 스타벅스에 가서 버터를 넣은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낮에는 일본문화원 영화관이나 새문안교회 같은 곳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눕지 않았다. 누울 곳이 없어서 눕지 못했다. 대신 교회나 영화관, 카페에서 앉은 채로 종종 졸았다. 그녀는 신문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일기를 썼다. 어느 날 자신을 촬영하고 싶다고 찾아온 방송국 PD가 호칭을 뭐라고 하면 좋겠냐고 묻자 “김윤자씨”로 불러달라고 말한다.
작가는 김윤자에게 ‘맥도날드 할머니’ 대신 ‘레이디 맥도날드’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그녀에겐 할머니 대신 레이디라고 불러야 될 것 같은 위엄이 있다. “나는 이왕이면 멋있고 아름다운 게 좋아요. 선생도 그렇지 않아요?” 이렇게 말하는 김윤자의 당당함과 높은 자존심은 인상적이다. 하지만 현실의 그녀는 홈리스다.
그녀의 말과 행동이 지나치게 철이 없고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게 될 때쯤 소설은 김윤자의 삶의 방식이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노력임을 알게 한다. 돈도 없고 가족도 없고 집도 없고 나이까지 많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도 양식을 갖고 사는 것, 긍지를 지키고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님을, 집이 없고 일이 없어도 자기의 삶을 살아가야 함을 얘기한다.
‘레이디 맥도날드’는 가난한 노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일자리를 잃고 모아놓은 돈도 없고 가족도 없는 노인이 혈혈단신 거리를 떠돌며 외롭게 살아가는 말년을 그린다. 우리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김윤자도 자신이 거리를 떠도는 노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한은형이 만들어낸 김윤자라는 인물은 아주 낯설지만, 어쩌면 앞으로 종종 보게 될 노인의 모습일 수 있다.
“레이디의 집은 거리였다. 거리의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이 레이디의 응접실이었고, 교회가 레이디의 침실이었다. 패스트푸드점 열 시간, 교회 네 시간, 커피 전문점 네 시간. 매일같이 레이디는 이곳들을 오가며 자신의 삶을 살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