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의 기백’… 잇몸으로 8년 연속 KS 도전

입력 2022-03-31 04:07 수정 2022-03-31 04:07
두산 베어스 팬들은 스토브리그만 돌아오면 냉가슴을 앓는다. 2015년 우승 이후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금자탑을 세웠지만 번번이 FA로 주력선수들과 작별해야 했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는 무려 7명이 FA 신청을 했고 팀 주축 최주환 오재일 이용찬이 차례로 떠났다. LG에 좌완 함덕주를 내주고 영입한 양석환이 사실상 유일한 전력보강, ‘잇몸만 남았다’는 자조에도 불구하고 미라클 두산은 또다시 가을야구 진출을 일궈냈다.

71승65패8무 4위로 와일드카드전부터 치른 두산은 1, 2선발 아리엘 미란다와 워커 로켓이 이탈한 상황에서도 키움 LG 삼성을 연이어 제압하며 한국시리즈 무대를 밟았다. 비록 기력이 다해 1위 KT에 일방적으로 패했지만 두산팬들은 ‘라스트 댄스’를 만끽하며 강팀의 여운을 즐겼다.

강진성

시즌 종료와 함께 돌아온 FA시장에서 늘 그랬듯 외야 핵심 박건우가 NC로 떠났다. 허경민 정수빈과 함께 팀 핵심이었던 ‘90즈’는 해체됐다. 4번 타자 김재환을 4년 115억원에 눌러 앉혔고 FA 보상선수로 강진성을 지명했다. 방출선수 중 즉시전력감으로 기대되는 김지용과 임창민을 영입해 불펜 뎁스를 보강했지만 전력보강 요소는 크지 않다.

시즌 초반부터 암초와 마주쳤다. 지난해 압도적 퍼포먼스로 정규시즌 MVP와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에이스 미란다가 어깨 부상으로 이탈했다. 김태형 감독은 “캐치볼은 했지만 언제 등판할 수 있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미란다가 회복한 뒤 경기를 치르는 모습을 보면 개인과 팀 성적이 어느 정도 예상될 것 같다”고 진단했다. ‘건강한 미란다’의 복귀는 두산의 시즌 구상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로버트 스탁

일단 최고 162㎞를 던지는 새 외인 로버트 스탁이 강속구를 앞세워 개막전 1선발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 27일 SSG전에 선발로 나서 3이닝 5실점으로 아직 완벽히 적응한 모습은 아니다. 어느새 토종 에이스로 자리 잡은 최원준은 안정적인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지만 이번 시즌 다시 선발로 전환한 17승 출신 이영하와 젊은 선발 곽빈의 분발이 요구된다. 미란다 대신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하는 기대주 박신지가 난세의 영웅이 될 수 있을지도 관심사다.

이영하
박신지

불펜에서는 17홀드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홍건희와 베테랑 마무리 김강률로 이어지는 필승조가 올해도 뒷문을 책임진다. 우완으로는 이승진과 권휘 등 젊은 선수들이 중용될 전망이고, 좌완은 최고참 이현승과 돌아온 119승 투수 장원준이 노련한 투구로 허리를 받친다. 시범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신예 최승용, 양석환과 함께 트레이드로 팀에 합류했던 남호도 왼손 불펜으로 전천후 기용 가능성이 높다. 야수진은 세대교체에 돌입한 젊은 주전 선수들과 우승 주역인 최고령 키스톤 콤비가 조화롭게 공존해 해답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센터라인을 책임진 이적생 콤비 강승호-박계범이 시범경기 동안 나란히 제 컨디션을 보이지 못하는 가운데 지난해 부진으로 절치부심한 베테랑 김재호와 오재원의 기용 폭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 타격에서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차세대 유격수 안재석이 포수를 제외한 내야 전 포지션을 소화하며 주전 한 자리를 위협 중이다.

안재석

주장 허경민이 핫코너 3루를 책임지는 가운데 1루에는 지난해 장타력을 과시하며 팀 타선을 이끌었던 양석환이 부상 복귀 후 컨디션을 조율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지명타자 호세 페르난데스나 오재원, 이적생 강진성의 1루 겸업도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FA를 앞둔 박세혁은 최용제 장승현과 함께 안방을 지킨다.

김인태

박건우가 이탈한 외야는 ‘낭중지추’를 노리는 주전급 백업 김인태가 강진성과 함께 코너 한자리를 놓고 격전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김재환과 정수빈이 주전 라인업에 고정된 가운데 조수행 안권수 등도 타격과 수비 모두 발전된 모습으로 호시탐탐 기회를 기다린다.

주전이 빠져도 주전급 선수가 튀어나오는 ‘화수분 야구’는 2000년대 들어 두산을 상징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투자는 결국 성적으로 이어지고 잇몸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올 시범경기에서 두산은 12경기 단 1승밖에 거두지 못하며 최하위에 머물렀다. 어두운 전망에도 정규시즌에 들어가면 또 가을야구에 나서 재차 라스트 댄스를 출 수 있을지 두산팬들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지켜보고 있다.

정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