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423조원으로 코로나19 확산 전인 2019년 말(338조5000억원)에 비해 84조5000억원이나 불어났다. 지난 1월에는 한 달 새 2조1000억원 증가했다. 가계대출이 지난해 12월부터 두 달 연속 감소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출 잔액은 늘었지만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은 지난 1월 말 0.17%까지 하락해 가계대출 수치와 같아졌다. 그러나 부실이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자영업자의 체력이 약해졌다. 당연히 연체율이 증가해야 하지만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탓에 개인사업자대출이 얼마나 부실한지는 파악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실제로 2019년 1월 말에는 개인사업자대출 연체율(0.36%)이 가계대출 연체율(0.28%)보다 0.08%포인트 높았는데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 이후 2년 만에 같아졌다. 잠재적 부실로 볼 수 있는 정부 지원을 받은 개인사업자대출 잔액은 지난 1월 말 현재 만기 연장분 116조6000억원, 상환 유예분 원금 11조7000억원, 이자 5조원 등 133조4000억원에 이른다. 금융권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비중이 커 대출 중 가장 안정적으로 여겨지는 가계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의 연체율이 같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면서 “진짜 건전성 지표는 만기 연장·상환 유예 조치가 끝나야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사업자대출은 차주가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 등 가계대출을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아 한쪽의 부실이 다른 쪽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한은은 지난해 말 발간한 금융 안정 보고서를 통해 “신규 개인사업자는 친지 또는 동업자 자금 등으로 창업하고 있어 해당 부실이 주변 가계 부채로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 10명 중 1명이 다중 채무자라는 점도 문제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말 대출을 받은 개인사업자 수는 277만여명인데 이 중 약 10%에 해당하는 27만여명이 3곳 이상의 금융사에서 돈을 빌렸다. 2019년 말 다중 채무자 수는 13만여명에 불과했는데 약 2년 만에 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위기감이 커진 금융권에서는 개인사업자대출 관리기구 설립 같은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학 신한은행 고문은 이날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 토론회에 참석해 “정부·은행·소상공인진흥공단 등이 공동 출자해 관리기구를 설립하고 은행에서 지원한 대출 중 일부 부실화 채권을 맡기자”고 제안했다.
금융당국도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개인사업자대출과 가계대출을 통합 심사해 관리하는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개인사업자대출을 받아 다른 데 쓰지는 않는지 ‘용도 외 유용’ 검사도 깐깐하게 한다는 방침이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