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처음 배울 나이에 내가 처음 잡은 것은 연필이 아니라 바이올린이었다. 이어서 피아노 미술 무용 등을 배우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던 6학년 때 어머니께서 한국무용을 권했다. 반주에 맞춰 무용 연습을 하다가 판소리를 처음 들었다. ‘어떻게 사람의 목소리로 저런 표현을 할까?’ 삶의 깊은 이야기가 배어 있는 듯한 애절한 소리에 매료되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14살 때 판소리를 시작했다. 다섯 가지 이야기를 바탕으로 특별한 악보 없이 북장단에만 맞춰 소리를 내는 판소리에 남다른 소질을 인정받으며 예술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나 부모님과 떨어진 기숙사 생활과 엄격한 선후배 관계는 너무 힘들었다. 게다가 전학 오면 의무적으로 발표를 해야 한다는 소리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판소리의 기본조차 잘 몰랐던 나는 결국 전교생과 선생님들 앞에서 보기 좋게 망신을 당했다. 그날 이후, 이를 악물고 매일 새벽부터 교복에 땀이 범벅될 때까지 맹연습을 했다. 그 결과 학교는 물론 각종 대회에서 계속 입상을 하며 두각을 드러냈지만 언제 빼앗길지 모르는 자리에 대한 불안감에 늘 긴장 속에 전전긍긍했다. 이런 나를 든든히 붙잡아 준 것은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출전을 하면 대기실까지 따뜻한 차를 가지고 오셨고, 객석에서 기도하며 응원해 주셨다.
그러던 아버지가 대학입학을 앞두었을 때 위암 판정을 받았다. 아버지도, 가족들도 슬픔에 빠졌고 어머니는 매일 눈물로 기도했다. 마침 박동진 국악경연대회에 출전한 나를 아버지는 수술 후 회복되지 않은 몸으로 찾아와 응원해 주셨다. 하지만 아버지의 암은 재발되었고 재수술도 불가능했다. 아버지께 마지막으로 큰 기쁨을 드리고 싶은 간절한 소망으로 전남 강진에서 열리는 ‘청자골 국악경연대회’에 참가해 1등을 하고 곧바로 아버지께 달려갔다. 겨우 엄지손가락을 올려 ‘우리 딸 최고!’하시며 환하게 웃으신 아버지는 다음 날 천국에 가셨다.
견딜 수 없는 슬픔에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어머니를 따라 교회에 나가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목사님께서 국악으로 찬양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하셨다. 다시 무대에 서는 것이 두려웠지만 “별아야. 포기하지 마! 하나님이 분명 너를 세워 주실 거야! 우리 함께 기도하며 준비해 보자!”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힘을 얻어 ‘하나님의 은혜’라는 찬양을 준비했다. 아버지가 천국에 가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집 앞에 꽃마차를 준비해 놓고 하늘나라를 구경시켜 주시며 여기가 너희 집이라고 15일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던 말씀을 가사로 옮겼다. 교회에서 처음 국악찬양을 부르자 극찬이 쏟아졌다.
그러나 골프선수였던 동생은 경제사정으로 훈련을 못하고 술 담배 게임에 빠졌다. 가족들 모두 힘들어할 때 아는 분이 동영상을 보내 주었다. 도저히 변화될 수 없는 분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고 놀랍게 변화된 모습에 큰 충격을 받고 아무 연고도 없는 춘천으로 바로 달려갔다. 온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와 찬양,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확실한 증거’라는 목사님 말씀까지 너무 새롭고 충격적이었다. 그날 저녁에 어느 언니를 만났는데 뜬금없이 “너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어?”라고 했다. 얼떨결에 “마음으로 믿어요!” 했더니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좌편, 우편에 강도와 같이 죽었는데 그럼 누가 하나님이냐?”고 했다. 자신 있게 “가운데요.” 했는데 “그럼, 십자가 세 개를 섞는다면 누가 하나님이냐?” 순간, 앞이 캄캄해지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활하신 분! 그분이 하나님이야!” 하는 언니의 말에 그동안 막혀 있던 모든 담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 속 실제 사건이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니 그분이 어떤 분인지, 왜 이 땅에 오셨다 가셨는지 알게 됐다. ‘아! 하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구나!’라는 고백이 바로 나왔다. 그런 분을 내 마음에서 버리고 내가 주인되어 세상의 욕심으로 살았던 내 모습. 나는 그 자리에서 내가 주인된 악랄한 죄를 눈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의 주인으로 영접했다.
더 이상 관심을 받기 위한 세상무대가 아니라 천국무대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국악찬양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교회 지체들과 병실을 돌며 전도하던 어느 날 ‘해와 달이 다 하도록 영원한 사랑, 하늘나라 꽃길을 여는 눈부신 사랑’이란 가사에 감동을 받은 어떤 분이 길을 열어 주어 본격적으로 병원 순회공연을 시작했다. 죽음 앞에 선 분들에게 찬양을 하며 예수님의 부활을 전할 때마다 아버지가 말씀하신 하늘나라 꽃길의 소망이 부어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남동생은 게임중독에서 벗어나 가족과 함께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코로나로 지금 공연은 못하지만 주님께선 세상의 무대가 아닌 영혼을 살리는 무대에서 어린 아이들을 만나 노래를 가르치며 복음을 전하게 해 주셨다. 의외로 판소리를 너무 재미있어 하는 아이들과 함께 마음껏 소리 지르며 기쁨과 자신감을 심어준다. 안개처럼 흐렸던 삶에서 부활의 확증으로 영원한 하늘나라 꽃길을 바라보게 하시고, 매일 주님과 함께 걸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린다.
노별아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