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거대담론의 그늘

입력 2022-03-31 04:08

“거대담론의 시대가 저물고 생활정치의 시대가 왔다.”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이 최근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남긴 말이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생활 정치, 실용주의, 실리주의를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소련 등 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냉전이 종식된 1990년대부터 꾸준히 나왔다. 김 전 장관의 언급은 우리 사회가 아직도 거대담론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자성의 고백이다.

거대담론은 사전적으로 ‘정치 외교 경제 군사 등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주제에 관한 담론’을 뜻한다. 이런 큰 주제의 이야기에 매몰되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상의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기 쉽다. 기능적 접근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거대담론의 프리즘을 통과하는 순간 정치적·이념적인 것으로 변질돼 갈등을 일으키곤 한다.

비슷하지만 의미가 조금 다른 표현으로 거대이론이 있다. 미국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즈는 저서 ‘사회학적 상상력’에서 몇 가지 구조화된 개념으로 세상을 설명하는 추상화된 이론을 거대이론으로 지칭했다. 밀즈는 탈콧 파슨스의 구조기능주의를 거대이론의 대표적 사례로 들었지만, 카를 마르크스나 막스 베버의 사회이론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정치 이념인 이데올로기가 그 정점에 있다.

거대담론, 거대이론 같은 사고방식은 80년대 학생운동 출신을 가리키는 86세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거대한 부조리의 시대를 산 이들은 민주화, 민족통일, 자주독립, 민중, 사회변혁 같은 문제를 고민하며 청춘을 보냈다. 좌파 이데올로기의 세례도 진하게 받았다. 시대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겼다. 민주화와 함께 기득권 세력에 편입돼 존재 양식은 달라졌지만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 사회를 민주와 반민주, 자주와 종속, 분단과 통일의 대결 구도로만 이해하려는 관성이 강하다. 음모론에도 쉽게 빠져든다.

거대담론·거대이론은 사회·정치적 의제를 제시하며 운동을 조직화하고 세력을 형성하는 데 유용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추상 수준이 높고 논리가 단순해 복잡다단한 현실의 문제를 포착하기 어렵다. 다양한 문제를 더 본질적인 것, 더 중요한 것으로 환원하고 진영논리에 대입해 편 가르기를 한다. 현실의 문제가 갖는 상황과 맥락의 구체성과 복잡성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선 이해관계와 갈등 구조가 갈수록 복잡해진다. 기존 사고방식으로 파악하기 힘든 새로운 문제도 계속 등장한다. 중 범위, 소 범위, 미시적 관점 등 다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하는 정치의 과잉도 정치 무관심만큼이나 부작용이 크다.

거대담론·거대이론에 젖은 세대가 86세대만은 아니다. 80~90년대 민주화운동은 ‘6·25전쟁 세대가 살아있는 한 이 땅의 민주화는 어렵다’고 한탄할 정도로 반공 이데올로기의 높은 벽 앞에 번번이 좌절했다. 이들에겐 반공이 곧 애국이었다. 레드콤플렉스로 불린 이 프레임에 들어가면 어떤 문제든, 어떤 사람이든 ‘반공이냐 용공이냐’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제 일부 극단적 세력을 제외하면 한국 사회 주류는 반공이데올로기의 그늘에서 벗어났다. 이번 대선에도 기간산업 국유화 등 사회주의를 표방한 정당이 후보를 냈지만 논란거리도 되지 못했다. 진보 성향 후보에 대한 색깔론도 두드러지지 않았다.

문제는 86세대다. 정확히는 86세대처럼 낡은 사고방식에 젖은 이들이다. 민주와 반민주, 자주와 종속의 대결 구도로 세상을 파악하고 죽창가에 감격하는 감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조만간 6·25 반공세대와 같은 취급을 받을지 모른다.

송세영 문화체육부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