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로 2년여 동안 억눌렸던 해외여행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각국이 잇따라 방역 규제를 완화하는 데다 해외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자가격리 의무가 백신 접종자를 대상으로 지난 21일부터 풀리면서 해외여행 수요가 봇물 터지듯 폭증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무착륙 해외여행’ ‘랜선 여행’으로 욕구를 달랬지만 ‘진짜 여행’에 대한 목마름은 가시지 않았던 게다.
하나투어에 따르면 국내 여행객이 무격리로 입국 가능한 나라는 총 39개국이다. 이 중 아동이 무격리 입국할 수 있는 곳은 35개국. 지역별로는 영국,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이 19개국으로 가장 많다. 4월부터는 말레이시아 입국 시에도 격리가 면제될 예정이다. 무격리 입국 39개국 중 코로나19 백신 미접종자의 입국이 허용되는 국가는 26개국으로, 이 중 유럽이 19개국이다. 베트남·두바이 등도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무격리 입국이 가능하다.
지역에 따라 입국 시 출발 1~2일 전 실시한 PCR검사 음성 확인서나 항원검사서 또는 백신 접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사이판, 괌, 싱가포르, 호주 등 35개국은 동반하는 부모가 입국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대부분 만 12세 미만 아동의 PCR 검사 및 백신접종 증명을 면제해주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해외여행 상품 판매가 급증했다. 정부가 격리 면제 지침을 발표한 지난 11일을 기준으로 11~20일 하나투어의 해외여행상품 예약은 3200명으로, 1~10일 예약 대비 93.7% 증가했다. 괌·사이판 중심의 남태평양과 유럽·미주 등의 수요가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해외항공권 예약도 눈에 띄게 늘었다.
한산했던 공항도 붐비기 시작했다. 입국자 자가격리 면제 시행 이후 25일부터 27일까지 인천공항을 이용한 승객 수는 4만6926명이다.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의 4만162명보다 17%가량 증가한 것이다. 출국 수속에 오랜 시간 줄을 서는 ‘장사진’도 코로나19 시대 보기 어려웠던 진풍경이다.
이런 추세에도 불구하고 해외여행에 발목을 잡히는 이들도 적지 않다. 어린아이 등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자녀를 둔 가족이다. 자가격리 면제 대상은 접종 완료자다. 2차 접종 후 180일이 지나지 않았거나 3차 접종자, 2차 접종 후 코로나에 걸려 완치된 사람이 해당한다. 접종 의무가 없는 12세 미만 소아·청소년과 의학적 사유로 백신을 맞지 못한 사람은 지금처럼 입국 후 7일간 격리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행 방식도 달라졌다. 감염 우려에 패키지나 단체여행보다는 소규모 여행, 유명 관광지의 문화 체험보다는 외진 곳에서의 야외 활동이 많아졌다. 과거 ‘서유럽 4개국’처럼 인접국을 함께 둘러보는 대신 ‘터키 퍼펙트 일주 9일’ 같은 한 국가에 오래 머무르는 게 대세다. 기존 비(非)인기 여행지의 약진도 두드러진다.
2년여 만에 재개된 해외여행에 가격 저항력도 낮아졌다. 비싸더라도 일정만 맞으면 여행을 떠나는 ‘여행 플렉스’ 현상도 나타난다. 비즈니스 좌석, 좋은 호텔, 괜찮은 옵션을 다 붙이고 인솔자가 동행하는 유럽 프리미엄 여행 패키지가 비슷한 동선의 일반 여행 상품의 2배가량의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홈쇼핑 방송 1시간 동안 586억원어치나 팔릴 정도다.
하지만 코로나 이전처럼 여행 문화가 자유로워지기엔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해외여행 수요가 차차 늘겠지만 오미크론 변이의 하위 변이인 ‘스텔스 오미크론’ 등 불확실한 요소가 많아서다. 지난해 단계적 일상회복 때처럼 번복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적지 않다.
남호철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