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차이로 승부가 갈린 20대 대선에서 각 정당과 후보들은 앞다퉈 이대남과 이대녀를 호명했다. 정치권은 이대남을 보수적이며 안티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 이대녀는 진보적이고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이들로 규정했다. 실제로 선거 직후 발표된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는 정치권의 ‘이대남·이대녀’ 프레임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과연 한국사회는 20대 대선 과정에서 20대 청년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일까. 20대 국민일보 인턴기자들이 청년 100명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대남, 이대녀로 불리기 싫어요
“정치적 프레임일 뿐, 성별로 나뉠 문제가 아니에요” 자신은 소위 ‘이대남’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익명을 요구한 A씨는 정치권의 이대남, 이대녀 프레임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A씨는 1일 “성별까지 가르며 서로 전혀 다른 부류의 인간이라는 듯이 얘기하는 것에 거부감이 느껴진다”며 “내가 속하지 않는 범주에 억지로 속해 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기까지 하다”고 했다.
실제로 구글 온라인 설문조사, 전화 면접, 오프라인 대면 조사 등을 통해 만난 100명에게 “이대남·이대녀라는 분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은 결과 ‘분류하는 것이 옳다’고 답한 응답자는 단 3명에 불과했다.
이들은 20대를 단순히 젠더 이슈 하나로 나누고 일반화하는 행태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군대를 다녀온 김모씨(26·남·대학생)는 “이대남이라는 용어를 앞세워 20대 남성들을 깡그리 뭉뚱그려 안티페미니즘의 상징으로 표현한다는 문제점이 있다”면서 “페미니즘을 싫어하는 20대 남성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이것이 곧 그들이 성평등 자체에 반대함을 의미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치권이 자의적으로 청년의 목소리를 일반화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모씨(24·여·대학생)는 “‘20대 여자는 진보 정당을, 남자는 보수 정당을 지지한다’라는 인식을 고착화하려는 잘못된 용어”라며 “특정 세대, 성별 갈라치기는 부정적인 결과만 끌어낼 것”이라고 비판했다. 제모씨(20·남·대학생)씨도 “그 둘을 갈라치기해서 공약과는 상관없이 그저 서로를 비방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가”라며 “20대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일일 뿐”이라고 짚었다.
진보 이대남 尹, 보수 이대녀 李 찍은 이유
20대는 ‘이대남=보수·이대녀=진보’로 묶는 정치권의 이분법적 분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응답자들은 이번 대선에서 어떤 후보의 공약이나 비전에 동의해 선택했기보다는 상대 후보의 잘못이나 문제점 등을 피하거나 심판하기 위해 투표권을 행사했다고 답했다.
국민일보가 만난 남성 응답자 45명 중 윤석열 후보를 찍었다는 사람은 27명,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은 14명이었다. 여성 55명 중 41명은 이 후보를 지지했고, 윤 당선인에게 표를 준 사람은 8명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 등 기타 후보를 선택한 이들은 남성 4명, 여성 6명이었다.
20대 남성 중 민주당과 문재인정부를 심판하기 위해 윤 당선인을 뽑았다는 답변이 두드러졌다. 자신을 진보 성향 유권자라고 밝힌 심모씨(27·남·취업준비생)는 “이번 선택은 일종의 배신감에 기인했다. 현 정부에 대한 단죄의 성격이 더 강했다”고 했다. 심씨는 여성가족부 폐지 등 윤 당선인이 ‘이대남’을 겨냥해 내놓은 정책에 대해 “이것이 그를 지지하는 요인은 아니었다”고 분명히 했다.
이 후보의 도덕적 자질 문제로 윤 당선인에게 표를 준 이들도 많았다. 한모씨(27·남·대학생)는 “후보자의 도덕성을 우선으로 봤다”며 이 후보의 과거 전과기록 등을 투표하지 못한 이유로 들었다. 정치 성향에 따른 후보 지지라기보다 최악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심판’ 투표로 윤 당선인에게 표를 줬다는 얘기다.
이 후보를 선택한 20대 여성 유권자들이 모두 진보 성향이거나 민주당 지지자인 것 또한 아니었다. 여성들 역시 ‘차악’에 투표한 것은 남성들과 같았으나 그 대상이 달랐을 뿐이다. 윤 당선인이 드러낸 여성 혐오에 가까운 인식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앞장서서 보여준 성별 갈등 조장 정책을 편 것에 반발해서 민주당을 찍었다는 응답자가 제법 많았다.
자신을 보수 성향 유권자라고 밝힌 김모씨(29·여·직장인)는 “(이번 선거에는) 여성 문제를 고려해 처음으로 민주당에 표를 줬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청한 B씨(28·여·직장인)는 “평소와 달리 이번 대선에선 특히 여성 문제에 관심을 뒀다”며 “국민의힘의 반여성 정책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진보·보수·중도로 딱 나눌 수 있나요?
20대 청년들의 다양한 생각은 그들의 정치 성향 질문을 통해 그대로 나타났다. 100명의 청년 중 자신의 정치 성향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답한 응답자는 51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이는 보수(15명)와 진보(25명)를 선택한 응답자의 합보다 많은 것이다. 나머지 9명은 응답하지 않았다. 이는 청년들의 정치 성향이 어느 한쪽으로 쏠려 있거나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모씨(23·대학생)는 “안보에 대해선 보수, 경제에 대해선 중도, (소수자)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라고 말했다. 자신을 진보 성향이라고 밝혔지만 국방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라고 소개한 응답자도 있었다. 또 “진보, 보수, 중도가 뚜렷이 나뉠 수 있느냐”며 되묻는 이도 있었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최근 부쩍 특정 세대에 대한 고정관념과 낙인을 통해 세대를 규정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분노를 동원해내는 경향이 강해졌다”며 세대주의의 오류라고 진단했다. 그는 “정치 성향이 분명한 40~50대, 60대 이상 노년층과 달리 20대는 정치 성향이 굉장히 유동적”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양 정당에서 어떻게든 우리 편으로 끌고 오려 했지만 결국 청년들이 정치권의 이런 행태에 환멸을 느끼고 분노하면서 청년들의 주체적인 불편함의 표현들이 적극적으로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도 “청년들은 이념보다 자신들의 실용적인 이익을 중시한다”며 “이번 선거에서도 직장부터 시작해서 결혼, 주거, 젠더 문제까지 본인들이 느끼는 고통, 불편함에 기반을 두고 결정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그는 “청년들은 각자의 이슈와 관심사가 바뀌면 또다시 이동할 수 있다”면서 다가올 선거에선 사뭇 다른 양상이 펼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영 서민철 이예솔 이찬규 황서량 인턴기자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