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13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열린 MTV 비디오 뮤직어워즈(VMA) 시상식. 당시 신예나 다름 없던 테일러 스위프트는 노래 ‘유 빌롱 위드 미(You belong with me)’로 최우수 여자 뮤직비디오상을 수상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기쁨의 소감을 이야기할 때 돌연 인기 힙합가수 카녜이 웨스트가 무대로 올라와 스위프트의 마이크를 뺏었다. 그러고선 “비욘세의 작품(싱글 레이디스·‘Single ladies’)이 우리 시대 최고의 뮤직비디오다”라고 외쳤다. 황당함에 말을 잊은 스위프트에게 관객들은 박수와 환호로 격려했다. 가수로서 가장 꿈꾸는 순간이 스타의 돌출 행동으로 망쳐버렸다. 최악의 시상식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 장면이다.
2013년 2월 25일 제8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사회를 맡은 배우 겸 시나리오 작가 세스 맥팔레인은 축하 공연으로 뮤지컬 쇼를 펼쳤다. 그런데 제목이 ‘우리는 당신의 가슴을 봤다(We Saw Your Boobs)’다. 영화에서 노출된 여배우들의 가슴을 봤다는 내용인데 메릴 스트리프, 앤젤리나 졸리, 샬리즈 세런, 나오미 와츠 등 쟁쟁한 이들이 실명으로 언급됐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고 가사에 거론된 일부 여배우들의 난감한 표정이 카메라에 잡혔다. 미국식 유머 코드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새 같으면 맥팔레인의 노래는 명백히 성희롱감이다.
웨스트와 맥팔레인은 시상식에서 배우 윌 스미스를 만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기지 않을까. 지난 27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벌어진 스미스의 시상자 크리스 록 폭행 사건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록이 아내의 탈모증을 농담으로 묘사하자 무대에 올라가 때린 건데 미국 내 여론은 스미스에게 상당히 비판적이다. 폭력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될 수 없기 때문이다. 스위프트는 VMA 소동 이후 별말이 없다 노래를 통해 웨스트를 저격했다. 영화계 스타인 스미스도 스위프트식 세련된 응징을 했다면 반응이 달랐을 것이다. 어쨌든 앞으로 미국 대중예술계 시상식 분위기는 꽤나 엄숙해질 것 같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