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신앙이 나에게 더는 통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교회 다니라는 부모의 요구에 습관적으로 끌려다니긴 하지만, 내 신앙의 체계에 스스로 의구심이 들기 시작합니다. 저를 사로잡았던 질문은 ‘지옥’이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했지요.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을 지옥으로 보내실 수 있을까.” 여러 변증가들의 대답을 찾았지만 CS 루이스의 ‘천국과 지옥의 이혼’만큼 시원하게 감각적으로 그리고 ‘짧게’ 그 대답을 준 책은 없었습니다.
지옥에 사는 사람들이 버스를 타고 천국으로 여행을 떠납니다. 지옥에 살았으니 천국에 방문할 기회가 주어진 사람들이 열광할 거로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관심이 없습니다. 천국을 관광하는 중에 벌어지는 여러 사건과 대화 속에서 루이스는 지옥에 관한 통찰들을 선보입니다.
‘천국에 가고 싶은데 못 가는 사람은 없다.’ 루이스가 준 가장 큰 선물을 제 말로 표현하자면 이러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천국 가고 싶은 사람을 막아서며 “넌 절대 못 와. 난 널 사랑하지 않거든.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 제멋대로 힘을 휘두르고 계시다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고 싶지만 원함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곳에 있고 싶어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죠. 실제로 소설에서 그들은 천국에 올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지옥을 택하고 맙니다.
루이스는 우리가 가진 죄성의 핵심을 보여줍니다. 모든 지옥은 실제로 내가 하나님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서 시작되고 있다는 것이죠. 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하지만 하나님 없는 나의 원함은 늘 지옥이 됩니다.
누가복음 16장에서 지옥에 간 부자가 나사로를 바라보며 자신의 괴로움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이 지옥 비유에 끝까지 나오지 않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천국에 데려가 달라는 말은 끝내 나오지 않습니다.
저는 모든 것이 이해됐습니다. 괴로워도 고통스러워도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지는 않는 곳. 그곳이 지옥입니다. 천국을 막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천국을 막는 것은 내 자신이었습니다. 저는 저의 죄인 됨을 고백하게 되었고, 신앙의 반항을 버리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책 속의 대화 중에 마음과 영혼을 흔드는 구절이 나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이것만 읽어도 이 책을 집어 들고픈 갈망이 생기리라 확신합니다. “하지만 버스를 못 타는 불쌍한 유령들은 어떻게 합니까.”
“타고자 하는 사람은 다 타게 되어 있으니 걱정하지 말게. 세상에는 딱 두 종류의 인간밖에 없어. 하나님께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하는 인간들과, 하나님의 입에서 끝내 ‘그래, 네 뜻대로 되게 해 주마’라는 말을 듣고야 마는 인간들. 지옥에 있는 자들은 전부 자기가 선택해서 거기 있게 된 걸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