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하지 않으면 멸종”… ‘유통 공룡들’ 의 탈유통 몸부림

입력 2022-04-02 04:05

유통 대기업들이 ‘공격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방아쇠는 코로나19가 당겼다. 비대면과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시장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변신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직면했다. ‘유통 공룡’들은 멸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인수·합병(M&A),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새로운 사업영토를 일궈서 유통에 쏠린 무게중심을 비유통으로 옮기는 것이다.

롯데그룹은 활발한 M&A로 두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부터 100억원 이상의 M&A와 지분투자 건수만 12건에 이르고 금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올해 3개월간 투자액(6846억원)은 지난해 투자 총액(4715억원)을 추월했다. 헬스케어부터 메타버스까지 분야도 다양하다. 이외에도 백화점은 미술품 경매, 제과업체는 건강기능식품, 편의점은 전기차 충전소 등 저마다 다양한 미래 먹거리 선점에 나섰다.

조용한 경영으로 평가받는 현대백화점그룹도 움직이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온라인 가구·매트리스 기업을 사들이면서 역대 최대의 M&A를 성사시켰다. 앞으로도 성장엔진 확보를 위해 투자와 M&A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태세다. 신세계그룹은 인터넷 미술품 경매, 메타버스 등으로 눈길을 주고 있다. 서비스와 커머스의 결합을 추진하면서 신세계만의 ‘플랫폼 경제’를 구축한다는 목표다.

바이오·모빌리티·식용곤충으로

롯데는 코로나19 이후 유통시장이 온라인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데, 경쟁사보다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미래 먹거리만큼은 반드시 선점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크다. 마트·백화점을 총괄하는 롯데쇼핑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2156억원으로 전년 대비 37.7% 줄며 부진한 실적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유통사업 비중을 줄이고 신사업으로 새판을 짜겠다는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지난달 25일 열린 제55기 롯데지주 정기 주주총회는 예상 시간을 훌쩍 넘겨 1시간20분가량 진행됐다. 미래사업전략을 주주들에게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주주들이 미래와 신규 투자를 지적하자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은 “새로운 것을 하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다. 미약할 수 있지만 조금만 더 기다려 준다면 신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롯데지주는 이날 바이오·헬스케어를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고 공식화했다. 700억원을 투자해 롯데헬스케어 법인을 설립한다. 식품사업군과 협업해 건강기능식품과 건강지향식 제품을 개발하고, 실버타운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또 다른 미래사업은 ‘모빌리티’다. 롯데렌탈은 지난달 7일 차량공유업체 쏘카의 지분 13.9%를 1832억원에 사들였다. 이재웅 쏘카 창업자, SK에 이어 3대 주주에 오른다. 차량공유업계 2위인 그린카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데도 경쟁사에 투자한 것이다. 메타버스에도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다. 롯데정보통신은 가상현실(VR) 콘텐츠 제작사인 칼리버스를 인수해 실사 기반 메타버스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식용곤충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달 10일 캐나다 식용곤충 제조기업 아스파이어 푸드그룹에 약 100억원을 투입했다.

롯데그룹의 광폭행보 뒤에는 신동빈 회장의 강한 의지가 자리한다. 신 회장은 올해 상반기 VCM(사장단 회의)에서 “그동안 생각해 왔던 성과의 개념도 바꾸겠다. 과거처럼 매출과 이익이 전년 대비 개선됐다고 해서 만족하지 말아 달라. 신규 고객과 신규 시장을 창출하는 데 투자를 집중해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다.

온라인 매트리스 판매, 미술품 경매도

신사업에 팔을 걷어붙인 건 롯데뿐만이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22일 글로벌 온라인 가구·매트리스 기업 지누스 지분 30.0%를 7747억원에 인수했다. 그동안 ‘빅딜’에 소극적이었던 현대백화점그룹의 역대 최대 규모의 M&A다. 현대백화점그룹 관계자는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온라인 비즈니스 혁신기업인 지누스 인수를 최종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메가트렌드나 소비패턴 변화에 맞춰 미래 수요가 확대되고 있는 사업 중 그룹의 성장전략과 부합하는 분야에 대한 투자나 M&A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세계는 지난달 24일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통해 신사업을 대거 추가했다. 부가통신사업, 인터넷 경매 및 상품 중개업, 인터넷 광고를 포함한 광고업·광고대행업·기타광고업, 데이터베이스 및 온라인 정보제공업, 인터넷 콘텐츠 개발 및 공급업 등이다. 지난해 국내 미술품 경매업체 서울옥션 지분 4.82%를 280억원에 사들였던 신세계가 미술품 경매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것이다. 최근 업계 최초로 모바일 미술품 경매 서비스를 선보이기도 했다. 차정호 신세계 대표이사는 주총에서 “라이브방송, 메타버스, NFT(대체불가토큰) 등 최근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분야에 선도적으로 전략화해 추진하고 있다. 서비스와 커머스가 결합된 신세계만의 플랫폼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편의점 CU를 운영하는 BGF리테일은 건강기능식품까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정기 주총에서 건강보조식품 소매업 등을 정관에 추가했다. 전기 오토바이 충전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고속도로 휴게소 및 주유소(LPG, 전기 충전소)의 건설, 관리, 운영, 임대, 관련 제반 사업도 사업 목적에 추가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