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과거 인간이 우러러본 대상이었다. 낮의 분주함이 가라앉고 세상이 어둡고 고요해지면 달은 돋보였다. 사람들은 달을 보며 일상에 지친 자신을 위로했고, 현실에서 채워지지 않은 소원을 빌기도 했다. 태양만큼 밝지도 별처럼 화려하지도 않지만, 시인들과 연인들은 마음속 진실함을 묘사하는 데 하늘에서 달을 으뜸으로 삼아왔다.
미국 작곡가 바트 하워드는 1954년 ‘In Other Words’(다시 말하자면)라는 재즈곡을 선보였다. 이후 곡은 도입부 가사인 ‘Fly Me to the Moon’(나를 달까지 날아서 데려가요)으로 더 잘 알려졌다. 이 곡은 여러 가수가 다양한 버전으로 리메이크했고,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광고 등에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며 20세기 대표 재즈곡이 됐다. 역사적으로 이 곡은 발표 당시보다 미국과 소련이 달 탐사를 놓고 우주 경쟁을 벌이면서 더 인기를 얻게 됐다.
지난해에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때문에 다시 주목을 받았다. 빚에 쪼들려 인생이 완전히 무너지기 직전인 사람들에게, 게임에서 살아남는 조건으로 어마어마한 현금이 약속된다. 게임의 법칙이라는 이유로 무차별 살육이 자행되는 장면에서, 더욱 세련되게 편곡된 ‘Fly Me to the Moon’이 배경으로 깔렸다. 달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일확천금을 바라는 욕망, 사랑을 노래하는 가사와 인간의 고통마저 볼거리 삼는 현실이 대조되는 명장면이었다.
달은 1959년 소련의 루나 1호 탐사를 계기로 과학적 정복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달 탐사선이 달을 ‘비신화화’하였다고 달의 상징적 위치가 박탈될 수는 없었다. 대표적 사례가 최근 주식과 코인 시장에서 은어로 사용되는 ‘달까지 가자’이다. 이는 주식과 코인의 시세 그래프가 우상향하다 결국 달까지 갔으면 하는 소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오징어 게임’도 자기 목숨을 걸고 대박을 탐하다 죽어간 사람들 모습을 ‘Fly Me to the Moon’, 즉 달까지 날아가자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지 않았는가.
상징이 아니라 실제 달까지 날아간 사람으로 미국의 아폴로 11호 선장 닐 암스트롱이 있다. 1969년 그는 달 표면에 발자국을 남기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교신하며 말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입니다.” 암스트롱은 달에서 지구의 사진을 찍어 보냈고, 덕분에 지구 위 사람들은 하나의 둥글고 푸른 지구의 모습에 ‘하나의 인류’ 개념을 겹쳐 볼 수 있었다. 냉전 시대 즉 지구가 둘로 나뉘어 경쟁하고 갈등하고 싸우던 시대에 달에서 본 지구 이미지는 인류의 연대를 아름답게 상징화했다.
첫 인류가 하나님이 만드신 달을 본 이래 역사는 계속 변화하고 사람들의 욕망은 복잡하게 꿈틀댄다. 어떤 이가 대박을 꿈꾸는 중 다른 이는 전쟁으로 고통받는다. 한 편이 풍요를 누릴 때 다른 한 편에는 억압과 파괴와 가난이 있다. 이렇게 지구 위 사람들은 정치 문화 언어 지역 빈부 등으로 갈라져 있다. 현실의 인간이 이 정도 수준일지라도 ‘달까지 가자’고 외쳤던 인류가 달에서 본 것이 ‘하나의 지구’였음은 기억하면 좋겠다.
인류가 벌이는 온갖 소란함을 뒤로하고 어둠이 깔리면 달이 어김없이 고운 빛을 드러낼 것이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궁창에 있을 달은 인간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해 소원할 고귀한 뭔가가 있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그것이 무엇일까. 사람마다 시대마다 다른 답을 내놓을 것이다. 그런데 ‘Fly Me to the Moon’의 마지막 가사는 “In Other Words, I Love You”(다시 말하자면,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이다. 달까지 가자고 멋들어지게 말한 것도 결국 사랑을 말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 뭔가 뭉클하다.
김진혁 교수(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