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발발 이후 한 달 이상 러시아군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우크라이나 동남부 전략적 요충지인 마리우폴이 사실상 함락됐다고 미국 CNN방송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이날 열린 5차 평화협상에서 러시아 측에 새로운 안보 보장 체제 구성을 제안했다.
CNN은 바딤 보이첸코 마리우폴 시장과의 인터뷰를 인용해 러시아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마리우폴에는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시내 대부분 지역이 러시아군 통제에 넘어갔다고 전했다. 보이첸코 시장은 인터뷰에서 “모든 것이 우리 권한에 있지 않다”면서 “불행하게도 우리는 지금 점령군 손안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도 도시 안에 16만명의 주민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며 “이들은 물과 식량은 물론 전기 난방이 끊겨 생활이 불가능한 환경에서 지내고 있다. 정말 끔찍하다”고 토로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또 러시아군이 마리우폴 주민들을 위한 인도적 지원이나 대피 차량 접근 등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이첸코 시장도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는 도시에 남은 주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라며 “버스 기사들이 주민을 데려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첫날부터 우리를 가지고 놀고 있다”고 비판했다.
마리우폴은 러시아가 강제 합병한 크림반도와 친러시아 세력이 설립한 도네츠크인민공화국(DPR), 루한스크인민공화국(LPR) 지역을 잇는 요충지이자 아조우해에 위치한 항구도시로 우크라이나의 주요 수출품인 밀 무역항이다.
러시아는 전쟁 초기부터 이 도시를 장악해 크림반도로부터 DPR·LPR을 이어 돈바스 지역까지 ‘러시아화’를 완성할 의도였다.
때문에 러시아군은 크림반도로부터 육·해·공군을 총동원해 마리우폴에 화력을 집중적으로 퍼부었으며 이 과정에서 마리우폴은 폐허를 방불케 하는 유령도시로 변모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군병력은 물론 최소 5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측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러시아의 공격으로 지금까지 도시 내 주거용 건물의 90%가 손상됐으며 이 중 40%는 완전 파괴됐다. 140여곳에 이르는 지역 내 병원, 학교, 유치원 등을 비롯해 다수의 공장, 항구 등도 러시아군 폭격으로 피해를 봤다.
한편 이날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5차 평화협상에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새로운 안보 보장 체제 구성을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측 대표단 일원으로 참석한 미하일로 포돌랴크 대통령실 고문은 이날 협상 종료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에 새로운 안보 보장 시스템을 제안했다”며 “우크라이나 안보가 보장된다면 중립국 지위를 채택하는 데 동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포돌랴크 고문은 “우크라이나는 터키를 잠재적 안보 보장국 중 하나로 보고 있다”며 “이스라엘, 폴란드, 캐나다 등도 새로운 안보 보장국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중립국 지위를 채택할 경우 우크라이나 내에 외국 군사기지 유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러시아와 최종 협정이 발효되려면 우크라이나 영토 전체에 완전한 평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국민투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측은 “협상이 건설적으로 진행됐다”며 “이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협상 직후 키이우와 체르니히우 지역 군사 활동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러시아 측은 상호 신뢰를 높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신창호 선임기자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