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없애 주마’ 러, 우크라 문화유산까지 파괴

입력 2022-03-30 00:02
오데사 총독으로 재임하면서 오데사를 계획 도시로 발전시키고 경제, 문화, 정치를 크게 발전시킨 공적을 쌓은 듀크 드 리슐리외의 동상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모래주머니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 우크라이나 지역 관리들은 러시아군의 문화재 파괴에 대비해 각종 역사적 유물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국가 기념 건축물 보호장비를 설치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 문화유산과 박물관 등을 파괴하거나 약탈하는 등 ‘반달리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 지우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NBC는 28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비영리 정치단체 ‘트랜스애틀랜틱 대화 센터’를 인용해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후 최소 39곳의 주요 역사·문화 시설이 파괴되거나 약탈당했다고 보도했다.

지난 23일 마리우폴 시의회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유명 예술가들의 작품 2000여점이 전시된 아르히프 쿠인지 미술관을 파괴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는 지난 26일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1만5000여명이 학살당한 드로비츠키 야르의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파괴했다”면서 “정확히 80년 만에 나치가 돌아왔다”고 비난했다. 그 외에도 2만5000여점의 예술작품이 전시된 하르키우 미술관이 공격받는 등 곳곳에서 문화재와 박물관 파괴가 이어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훼손하기 위해 역사·문화 시설을 표적으로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리나 포돌랴크 우크라이나 문화부 전 차관은 “러시아가 우리 유산과 역사, 정체성, 독립국으로서의 우크라이나를 지도에서 아예 지워버리려 한다”고 비난했다. 요하난 페트로프스키 슈테른 노스웨스턴대 교수는 “러시아의 역사·문화 시설 파괴는 ‘고의적인 파괴’로 볼 여지가 더 많다”며 “러시아는 점령지 도서관에서 역사 교과서를 불태우고 있다”고 말했다. 1954년 체결된 헤이그협약은 역사적 기념물과 문화유산을 목표로 공격하는 행위를 국제법상 전쟁범죄로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침공 전후 우크라이나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우크라이나에는 독립국이라는 게 없다”며 “현재의 우크라이나는 전적으로 러시아, 옛 소련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슈테른 교수는 “푸틴은 1860년대 러시아 관료들처럼 우크라이나어나 우크라이나 국민은 존재하지 않으며 우크라이나라는 나라는 없기에 주권도 있을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