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오전 6시48분쯤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한 교회가 요란한 알람 소리로 가득 찼다. 화재감지기가 작동하면서 소방서에도 자동으로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당국은 소방차 12대와 48명의 소방관을 긴급 출동시켰다. 하지만 현장에 도착한 요원들은 이내 허탈하게 돌아서야 했다. 연기도 불꽃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화재감지기가 오작동한 것으로 결론 짓고 씁쓸하게 철수했다.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인한 ‘허탕 출동’이 잇따르면서 소방관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명 ‘쌍불’(여러 곳에서 동시에 화재가 발생하는 것) 상황에서 오작동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칠 뻔한 아찔한 순간도 반복된다. 임명수 인천 남동소방서 소방교는 29일 “화재감지기 오작동으로 먼저 출동했다가 같은 시간대에 다른 곳에 불이 나 현장 출동이 5분이나 지체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인근 소방서에서 먼저 출동해준 덕에 위기를 넘겼지만 초기 진압 골든타임이 중요한 화재 사고에서 감지기 오작동이 큰 걸림돌이 된 것이다.
현장에서는 특히 유동 인구가 많거나 건물이 밀집된 지역일수록 오작동이 혼란을 키운다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달 3일 오전 7시34분쯤 서울 영등포구 신도림역 승강장 일대에서 화재 알람이 울렸다. 당시 인근 5개 소방서가 소방차 16대와 소방펌프차 1대를 비롯해 55명의 소방관을 출동시켰다. 화재감지기에 먼지가 끼면서 오작동한 것이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신도림역에서만 지난해 18차례 화재감지기 오작동이 있었다. 소방관들은 해당 오작동으로 10차례나 허탕 출동을 했다. 같은 기간 관악구 신림역에서도 11차례 오작동이 벌어져 소방관들은 6차례 헛걸음을 했다. 화재감지기 오작동이 포함된 오인 출동은 2016년 1만3660건에서 2020년 4만5424건으로 3배 이상 늘었다. 오작동만 별도 집계한 통계는 없지만 오인 출동의 상당수가 오작동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소방관들은 비슷한 신고를 접할 때마다 감지기 오작동을 직관적으로 느낀다고 한다. 실제 불이 났다면 비슷한 시간대에 전화·문자 등 다른 경로로도 신고가 접수되게 마련인데 오작동은 그렇지 않아 추정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기도 한 소방서 관계자는 “이젠 무전만 들어도 오작동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 정도”라며 “동료들끼리 ‘이건 딱 봐도 오작동이다’ ‘또 그 건물이네’라는 얘기를 나누면서 어쩔 수 없이 출동 준비를 한다”고 털어놨다.
오작동의 주요 원인은 감지기 성능의 한계 때문이다. 가격과 설치 비용이 저렴해 폭넓게 보급된 ‘일반스포트형 감지기’는 열이나 연기에 대한 감도 조정이 불가능하고 기기 자체의 오염 정도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소방청도 지난해 4월 신형 화재감지기 연구개발에 착수한 상황이다. 소방청은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기기 자체의 오인율을 낮추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장군 한명오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