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일본 고교 2학년 이상 학생이 사용하는 교과서에 ‘강제 연행’과 ‘종군위안부’라는 명칭이 사상 처음으로 삭제된 것이 확인됐다. 특히 이 같은 ‘역사왜곡’은 일본 정부의 압력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29일 열린 교과서 검정심의회에서 고교 2학년생 이상이 내년부터 사용하는 239종의 교과서가 검정 심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심사를 통과한 역사 분야 교과서 14종(일본사탐구 7종, 세계사탐구 7종) 중 일부 교과서 신청본에 있던 ‘강제 연행’ 표현이 검정 과정에서 ‘동원’이나 ‘징용’으로 수정됐다.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술과 관련해서도 일본사탐구와 세계사탐구 교과서 14종 중 일본군이 관여한 점과 강제적 동원이었다는 점을 설명하는 교과서는 짓쿄출판의 일본사탐구 1종뿐이었고, 나머지는 부실하게 쓰거나 아예 다루지 않았다.
실제 14종 가운데 일본사탐구 6종과 세계사탐구 2종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뤘는데 짓쿄출판을 제외한 나머지 교과서는 일본군 관여와 강제적 동원 중 한 가지만 서술하거나 둘 다 쓰지 않았다. 나머지 6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아예 다루지 않았다.
이는 검정 과정에서 ‘정부의 통일적 견해에 기초한 기술이 아니다’는 지적에 따라 출판사가 검정 통과를 위해 수정한 것이다. ‘정부의 통일적 견해’란 스가 요시히데 내각 때인 지난해 4월 27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조선인 노동자 ‘강제 연행’이나 ‘종군위안부’라는 표현은 부적절하고 ‘징용’이나 ‘위안부’로 쓰는 것이 적절하다는 정부 입장이 채택된 것을 뜻한다. 앞서 문부과학성은 지난해 4월 각의 결정이 나오자 그에 앞서 검정을 통과했던 교과서에도 강제 연행과 종군위안부가 포함된 기술을 변경하도록 압박했고, 실제 각 출판사가 이런 표현을 수정한 바 있다.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부당한 영유권 주장도 강화되고 있다. 이번에 검정을 통과한 지리총합(1종), 지리탐구(3종), 지도(1종), 공공(1종), 정치경제(6종) 등 역사를 제외한 12종의 사회 과목 교과서에는 ‘독도가 일본(우리나라) 고유 영토’라는 기술이 모두 포함됐다. 12종 가운데 8종에는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기술이 포함됐다. 3종에는 ‘한국이 점거’ 또는 ‘한국이 일방적으로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다’는 표현이 들어갔다.
이들 과목은 개정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의 적용 대상이어서 검정을 통과하기 위해 일본 정부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날 외교부 대변인 성명을 내고 “자국 중심의 역사관에 따라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하며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이상렬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외교부 청사로 구마가이 나오키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해 항의했다.
황인호 김영선 기자 inhovator@kmib.co.kr